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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선교(10) 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 파견, 양업교회사연구소장)
차쿠지기 2025-04-24 21:24 조회 203

선교(10) 

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 파견, 양업교회사연구소장)

 

최양업 신부의 활동과 업적은 선교(missio)’로 요약될 수 있다.” 한국 천주교회사 연구의 대부라고 일컫는 최석우 몬시뇰이 최양업 사제서품 150주년을 맞아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기조 강연으로 한 말이다. 그 누구라도 최양업 신부의 서한 중에 이 선교라는 말보다 더한 중심어를 찾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최양업 신부님이 왜 1년에 7000여 리의 길을 십수 년 동안이나 걷다가 그 위에서 최후를 맞았는가?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였다. 그분의 최후의 모습 자체가 말없이 웅변하고 있는바, 역시 선교라는 두 글자밖에는 없었다. 일생의 지상 과제였다.

 

그렇다면 최신부님은 왜 그렇게 열심히 선교했을까? 물론 사랑하는 동포에게 사랑하는 구세주를 알려주고 싶은 열정 때문이었다. 한 해에 3000명가량의 고해를 듣고 수백 명을 입교시켰는데, 찾아오는 신자들이 아니라 산골짜기마다 일일이 찾아가야 만날 수 있는 신자들이었다. 그렇게 하고 난 후에도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안타까워하며 , 만일 또 한 사람의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성인이 여기에 나타나셨다면 저들에게 얼마나 뜨거운 환영을 받겠습니까?”하며 부득이하게 찾아가지 못한 곳을 안쓰러워하였다.

 

최양업 신부님이 죽을둥살둥 선교한 또 한 가지 이유로는 순교로 나가지 못한 마음이 선교라는 물길로 바뀌어 흐른 점도 없지 않으리라. 소팔가자에서 쓴 두 번째 편지에서 그리스도 용사들의 그처럼 장렬한 전쟁(순교)에 참여하지 못하였으니 저는 정말 부끄럽습니다.”고 하였다. 그야말로 순교 정신의 꽃이 선교의 열매로 화신한, 순교 영성과 선교 영성의 접점을 이루어 주었다. 대저 김대건 신부님이 한국의 베드로 사도요 최양업 신부님을 한국의 바오로 사도라고 하는 데는, 복음 선포의 길 위에서 피었다가 진 생이라서 그럴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2년째 전교의 달을 그냥 보내버렸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전교는 꼭 남에게 하는 것만이 아닌 것 같다. 자기가 자기에게 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뇌가 입에게 신호를 잘 전해서 남도 살리고 자신도 살리는 말을 발설케 할 수 있다. 두 개의 발이 보람된 장소로만 데려간다면 자신의 눈과 귀에게 전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쨌든, 남에게 선교하기 위해서 먼저 자신에게 선교해야 마땅하다. 거울을 보고 자기 낯빛부터 살펴야 한다. 내 얼굴이 평화로와야 남에게 평화를 빕니다.”하고 인사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