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명(11)
최양업 신부님의 첫 사목지이자 김대건 신부님의 요동 거점이었던 중국 차쿠-백가점을 찾은 순례객 중에는 윤동주 시인의 ‘용정 명동촌’을 거쳐 와, 안중근 의사의 ‘대련 여순 감옥’에 가서 마치는 패키지 여행자가 있다. 시대의 선각자요 선구자인 네 분을 가만히 살펴보면 어째 최양업 – 윤동주가 비슷한 기질이고, 김대건 – 안중근이 같은 과인 것 같다. 마음씨의 결이 그렇다.
김대건 신부님과 안중근 의사는 자기의 뜻을 공격적으로 관철해 나갔다. 역류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에 반해 최양업 신부님과 윤동주 시인은 순리를 따르는 쪽이었다. 그러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어둠 앞에서는 스스로가 희생제물이 되어 빛의 제단에 바쳤다. 윤시인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다가(서시), 교회당 꼭대기를 보며 십자가의 죽음을 원하더니(십자가), 결국 나이 스물여덟에 “최후의 나”가 되어서야 최초로, 자신과 화해를 청하는 악수의 손을(쉽게 쓰여진 시) 내민다.
최신부님은 15번째 서한에서 “우리는 만사에 항상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섭리에 완전히 복종시켜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평소에 부드러운 분이 순명에 관해서는 한 치의 양보가 없다. 단호하다. 자기가 순명하지 않았으면 벌써 조선에 입국해있거나, 아니면 이미 순교하여 저세상에 들어가 있을 것이라고 피력한다. 또 타인에게 자신의 계획을 밝힐 때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2,4,6,12,15서한)”이란 표현을 입버릇처럼 썼다. 철저한 순명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의 순명은 무조건적인 순종이나 처세술에 의한 발로는 아니었다. 당시 양반 주교복사들이 교회 안에서 신분 차별의 문제를 일으키자 페레올 주교께 여러 차례 건의를 드렸고, 직접 면담을 통해 충언하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꾸지람을 받았지만 인격적 순명의 길 위에서는 진언을 멈추지 않았다.
이를테면 “쏘옥”하고, 마음이라는 밭에서 막 하느님 섭리의 싹이 발아했다고 치자! 최신부님도 아직 그게 하느님의 뜻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 단계라고 치자! 그렇더라도 최신부님은 그 연하디연한 새순 앞에 자신의 억센 뜻을 세우지 않았다. 흡사, 성모님처럼 이 일이 대체 무슨 뜻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조바심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기다림을 ‘순리’라는 평상심으로 견지하다가, 마침내 완전히 복종해 갔다. 순리와 나란히 걷는 순명의 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