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와 고양이는 분도 출판사에서 매는 잡지에 실린 글입니다.
聖地와 고양이
요 며칠 황색 암컷이 성당 마당을 오가더니 자기와 똑 닮은 아기 고양이 두 마리를 남겨 놓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인데다 그마저도 한 마리는 왼쪽 눈이 감겨있다. 스스로 애꾸눈인지를 아는지, 아니면 눈에 상처가 날 때 쇼크를 먹었는지 낯을 많이 가린다. 그래도 첫 대면부터 “아이고, 가엾어라!”하는 인간의 언어가 따뜻하게 전달되었을까? 멀쩡한 고양이가 병아리처럼 앞장서면 성모상 회향목 아래서 쫄래쫄래 기어 나온다.
“수녀님, 이 고양이들 끼니 좀 챙겨줘요.“
본인이 직접 먹이를 챙기지 않고 중국 수녀들에게 미루기로 한다. 그 까닭도 굳이 밝히기로 한다.
“6년 전인가, 고양이 한 마리가 따라오길래 멸치를 주었더니 매일 밤 찾아왔어요. 당시는 市정부 종교국에서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던 때라 24시간 생활 반경이 체크되었는데, 나는 일부러 밤 8시부터 고양이와 1시간을 산책했지. 말이 산보이지 공산당들 눈에는 ‘저 한국 신부가 성인처럼 매일 고양이와 묵주기도를 한다.’고 보였을 거예요. 물론, 로사리오 기도를 하기는 했지. 그런데 내가 한 발자국 옮길 때마다 고양이가 다리 사이를 8자로 감고 돌아, 기도를 하는 건지 고양이와 노는 건지 모를 정도였소. 그러다가, 어느 한 여름밤, 남자 친구 고양이가 나타났고...... 다시는 보이지 않더구만, 에이!”
말끝이 재미있었는지 쑨 수녀는 호호 웃으며 고양이 밥그릇을 준비하겠노라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2년 넘게 귀국해서 소설 최양업 【차쿠의 아침 마지막 이야기】를 집필한 적이 있다. 아마추어 작가이다 보니 집필 장소 물색에 신경이 더 곤두섰다. 깊은 산 속에 은둔해 있는 멍에목 성지가 최종 낙찰되었다. 창작의 동굴, 소위 ‘글감옥’에 들어앉아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그러한 때에도 회색 고양이만은 눈에 불을 켜고 작품의 세계에 빠져있던 내 곁을 지켜주었다. 나중에 듣고 보니 그 회색 고양이는 제법 떨어져 살고 있는 멍에목 성지 김신부가 돌보는 산고양이들 중의 한 마리였다는 거다. 명에목 성지 신부 역시, 자신의 일상 생활안에 고양이와의 시간을 집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비단 멍에목만이 아니었다. 배티성지라고, 그곳도 산속에 있는 성지인데, 배티성지 신부 역시 손수, 들고양이들의 밥을 챙기고 있었다.

聖地와 고양이의 상관 관계라? 성지 신부들이 고양이를 내쫓지 않는 이유야 나중에 전혀 다른 장소에서, 우연한 인물의 일성으로 추론이 내려지고 말았다. 대전 교구에서 성지 담당 신부만 20년 넘게 했다는 신부가 있는데, 하루는 도통한 얼굴로 왈, “성지 신부 본연의 시간은 아무도 없는 시간대이다. 오전에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인파가 북적거리다가 모두 돌아가고 아무도 없는, 성지 경내를 둘러보는 오후 5시, 그 허허로운 시간이 바로 성지 담당 사제 생활의 관건이다.” 소조한 그때, 아무 고양이라도 얼씬거렸다면 누구인들 잘해주지 않았을까?
여기 차쿠도 400킬로 이내에 한국인이 한 명도 없다. 지금은 반간첩법 때문에 중국 교우들 역시 제대로 만나지 못한다. 그런 곳을 20년째 지키며 살고 있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했던 사람이 ‘등대지기’ 코스프레나 하는 팔자가 되었다니......
그렇지만 이제는 고양이한테나 의지하지 않기로 했다. 차쿠는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님의 첫 사목지이자, 병인박해 시절 14년 동안이나 조선 교구청이 소재했던 유서 깊은 성지이다. 북적거리기는커녕 개미 새끼 하나 보이지 않는 오전과 연이어 찾아오는 어스름한 오후의 시간에라도, 성지 담당 신부로서의 허허로움을 은총과 그 비슷한 것들로 채우고 싶다.

저만치에, 막 개업해서 간판을 단 ‘차쿠 양업 여행문화 유한공사’라는 한국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올해는 이 외국 오지로 벌써 12팀이나 예약이 됐다. ‘여행객’이라는 명목으로 찾아올 한국 순례객들을 생각하니, 벌써 지레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