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양업 영성 따라 살기 5)
최양업 신부님은 원래가 겸손한 분이다. 한국 천주교의 첫 번째가 아닌 두 번째 사제요, 아직 가경자에 머물러 있는 거로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객관적인 데이터로는 최신부님이 첫 번째 사제가 되어야 했다. 나이가 그렇고, 신학생 순번이나 학교 성적, 건강상으로도 김대건 신부님보다 앞선다. 4년이나 사제품이 늦어졌는데도 스스럼없던 동료한테까지 이에 대해 입 한 번 뻥긋했다는 기록이 없다. 오히려 사제품을 받으면서는 “이 고귀한 품위가 너무나 크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이 무거운 짐”이란 소회만 밝혔다.
겸손의 향기가 그의 육필 편지에 물씬하다. 자신의 이름 앞에 늘 ‘지극히 겸손한’ 혹은 ‘지극히 부당한’ ‘지극히 비천한 아들’이란 표현을 쓰는데, 스승을 대하는 이런 태도는 ‘엎드려 절한다.’ 고 쓴 신학생 시절이나 ‘쓸모없는 탁덕’이라 쓴 사제가 된 이후에나 변함이 없다.
무엇보다 최양업의 라틴어 실력이다. <최양업 서한집>을 판독한 故최승룡 몬시뇰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완벽한 실력”이라 했다. 156개의 단어가 들어간 하나의 긴 문장에 15개의 쉼표와 24개의 동사가 연속해서 나오는데, 문법에 어긋남이 없는 유창한 문장이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서툴고 어설프기 짝이 없는 글”이라고 낮춘다. 또 1847년 홍콩에서 번역한 <조선 순교자 행적>이야말로 교황청에 ‘시복 증빙 서류’로 보내진 명문이었다. 이때 역시 문장이 초라하고 문법에 거슬리는 곳이 많다며 스승께 교정해 줄 것을 청한다.
1854년, 이제는 최양업 신부가 배티 신학교의 스승이 된다. 페낭에 3명의 신학생을 유학 보냈는데, 페낭 교수신부님들에게 조선 신학생들을 잘 부탁한다며, 한 가지만을 주문한다. ‘그리스도의 겸손’을 잘 가르쳐달라는 것이었다.
대개 주변에서 보면, 자존감이 있고 신앙이 깊은 분들이 겸손하시다. 자존감이 있으면 무시를 당하더라도 자신을 낮출 수 있다. 그런데 그 낮춰진 상태를 지속하게 하는 건 신앙심 같다. 만사를 하느님께 모두 맡길 줄 아는 신앙의 뚝심 같다. 최양업 신부님은 애초, 부모 모두 순교한 집안의 맏이라는 자존감이 있었다. 게다가 하느님의 자비에 일상을 송두리째 맡기며 사는 신앙심 쪽으로야, 조선 안팎에 이만한 분이 있었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