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신세대 (8)

페이지 정보

작성자 차쿠지기 댓글 0건 조회 381회 작성일 21-09-07 08:55

본문

()시대 (양업 영성 따라 살기 8)

 

최양업 신부님은 시대의 선각자요 선구자였다.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문명이 앞선 선진 홍콩에서 12년이나 살다 온 유학 사제의 눈에 비친 조선 사회는 어땠을까? 한마디로 패색 짙은 쇄국이었을 것이다. 조선 후기까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할퀴고 간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양반들, 굶어 죽으면 죽었지 도무지 땀 흘려 일할 줄 모르는 그들이 모든 것을 틀어쥐고 있었으나 (돈으로 산) 공명첩 양반까지 늘어나자 백성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여성들은 삼종지도라는 예법에 눌려 사대부집의 부녀자이든 양민, 상민의 여인이든 철저히 인권 유린되었다. 노처녀나 과부, 이혼녀는 납치해 가곤 하는 미개사회였다. 또한 같은 민족끼리 노예로 사고파는 야만의 시대였다. 거기다가 인간사 길흉화복의 모든 출처를 미신에 두어 동네마다 집집마다 귀신을 모시고 살았다. 그 음습한 속에 요요히 꿈틀거리는 샤머니즘으로부터 해방되는 일이야말로 시급한 문제였다.

 

최양업 신부님은 조선의 유일한 과학 이성 보유자로서 백성의 처지를 보며 누구보다 마음이 찢어지고 가슴이 아팠다. 어떻게 해서든지, 사회적 핍박에 눌린 최하층 약자들의 처지 개선을 위해 구체적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만민평등, 신분타파, 여성 인권에 대해 얼마나 마음을 쓰는지는 서한집 어디를 펴보아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모르면 모른다고 넘어가겠지만 다 보이고 훤히 꿰뚫을 수가 있는데, 언제까지 조선은 몇몇 대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외부의 문을 꼭꼭 닫아걸까? 산업혁명의 동력으로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전 세계적 (개화의) 흐름을 어떻게 하면 꽉 막힌 조국에 흘러들어오게 할 수 있을까? 이처럼 공개적이고 합법적인 조불 양국의 교류 방법을 놓고, 최후의 순간까지 고뇌했다. 마지막 편지에서, 지상의 하직 인사를 고하면서도 합리적인 조선의 문호개방에 대한 이 염려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최양업 신부님의 이런 영성을 무엇이라 명명해야 될지 모르겠다. 작정 없이 열거해 본다. 이 중에 적당한 이름이 있으리라. 인권 영성, 계몽 영성, ()시대 영성, 개화 영성, 사회개선 영성, 인본 영성, 미래영성, 젊은 영성 등등...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그것이 시대의 징표를 읽고 미래를 준비하여 좋은 세상” - “젊은 교회를 앞당기는 영성임에는 틀림이 없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