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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십자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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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쿠지기 댓글 0건 조회 286회 작성일 21-09-07 08:54

본문

십자가(양업 영성 따라 살기 7)

 

십자가는 최양업 영성의 중심이다. 스승이요 평생의 장상으로 모셨던 르그레즈와 신부 (기해박해 때 아버지를 잃고 난 후에는 아예 부친으로 따랐던 것 같다), 이 노신부에게 엄숙히 서약한다. “원컨대 지극히 강력하신 저 십자가의 능력이 저에게 힘을 응결시켜 주시어 제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외에는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기를 빕니다. 이 서원을 신부님의 기도로 굳혀주시고, 완성시켜 주시기를 청합니다.” 이 대목을 <십자가 서원>이라 칭하고 싶다. 십자가에 대한 충성이 그 전후의 기조가 되어 흐르기 때문이다.

 

필시 그는 (시샛말로) 대박을 터뜨리는 기적보다 어려운 현실의 십자가를 잘지는 인내를 간청했을 터이다. 한시바삐 박해받는 조국에 입국하려 했던 것도 겨레가 짊어진 십자가의 대열에 동참하기 위함이었다. 그것만이 거기 달리 분께 허물없이 나아가는 길이라 여겼다. 아래 편지가 이 충심의 증거이다. “언제쯤이면 저도 형제들의 고난에 참여하기에 합당한 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수난에 부족한 것을 채워 구원 사업을 완성할 수 있을까요?” 이렇듯 예수님의 말씀과 맥을 같이 한다. “악하고 절개 없는 이 세대가 기적을 요구하지만 예언자 요나의 기적밖에 따로 보여줄 것이 없다.(마태오 12,40)”

 

복음에 명시되듯 십자가는 구원으로 가는 유일한 외나무다리이다. 모든 게 다 지나가는 일체의 가변적인 현세에서 불변의 세계로 들기 위한 문이 어디 따로 있는가? 십자가만이 영원한 부활의 길을 가리키는 도로표지판이다. 그러나 최신부님은 인생의 종착에나 마주 설 최종표지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이분이 일상생활의 모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자가는 지금 일상에서 날마다 생각하는 것들, 그나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강을 관리하는 그 지혜이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재산을 건사하는 비결이다. 그나마 남은 형제간의 우애를 유지해나가는 지혜이다. 지금 그나마 받고있는 축복을 지속시키는 비결이다.

 

만약 십자가는 □□이다.’ 라고 네모 칸 채우기를 하라 한다면 십자가는 이요 대패라고 하고 싶다. 머릿결이 들고 일어났을 때는 빗으로 빗어야 잘 가라앉는다. 또 대패질을 할 때 나뭇결 방향으로 해야지 역으로 했다가는 끝까지 들고 일어선다. 왕왕 우리네 마음의 결이라는 것도 사납게 들고일어날 때가 있다. 그런 때, 다른 무엇으로는 도저히 어찌해볼 수가 없는데, 십자가로는 그래도 빗어지고, 거칠어진 마음의 결을 평평히 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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