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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수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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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쿠지기 댓글 0건 조회 298회 작성일 21-09-07 08:53

본문

수분守分 (양업 영성 따라 살기 6)

 

대건아, 밀어붙여! 뒤는 내가 주서담을 겨.”

최양업,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보내고 있다. 만약 어떤 영화감독이 두 분 일대기를 스크린에 올린다면 명대사로 등장할 법한 내용이다. 김대건 신부님은 전형적인 공격수 스타일이다. 용감하고 민첩한 추진력으로 선교사들의 입국 해로를 개척했다. 상대적으로 최양업 신부님은 수비형이다. 신중하고 온유한 성품으로 때로는 겸손하게 때로는 자비롭게 후방을 챙겼다. 박해로 쓰러져 가는 교회를 일으켜 세웠다. 기실, 애초부터 소년 최양업은 느긋할 수밖에 없었다. 가정환경 상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온 교리 지식은 차치하고라도, 26일부터 라틴어를 시작했으니 711일부터 배우기 시작한 대건 소년보다 유리한 편이었다. 덕분에 최양업 소년은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차분한 판단력으로 여기저기를 고려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분수를 알고, 본분을 지킨다.”는 수분守分! ‘최양업 영성의 하나로 동양철학 냄새가 나는 이 수분을 꼽고 싶은 이유는 물론 스물한 살에 쓰신 편지글에 연유한다. “(중략)... 모든 사람들이 저에게서 떠나고 또 마침내 유일한 동료 김대건과도 떨어져 있는 저는, 작은 방에 외톨이로 남아있습니다만 하느님과 홀로 있기가 소원입니다.” 외로움에 하지 않고 하느님을 온전히 만나니 충일했었다. 혼자서도 자기 관리가 잘 된다는 뜻이다. 이런 삶의 수비야말로 차분히 수분하는데 기초요건이 아닐까?

 

기왕 동양철학이 나왔으니 <중용>에 나오는 신독이라는 두 글자를 빼놓을 수 없다. , “홀로 있어도 삼간다.”이니, 무슨 영성 용어만 같다. 아니나 다를까? 다산 정약용 요한 선생께서도 신독을 일컬어 경외의 기도라고 했다. 저서 <중용자잠>에서 이렇게 비유한다. “야밤에 산속을 홀로 걷는 자는 절로 무서워질 테니, 산속에 범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요, 군자는 홀로 있어도 나쁜 짓 하기를 두려워하니, 상제가 계심을 알기 때문이다.”

 

수분을 최양업 영성으로 추켜세우고 싶다. ‘자기 수비뿐 아니라 박해받는 교회의 수비에도 탁월하셨기 때문이다. 최신부님은 순교하고 싶어도 유일한 방인 성무집전자라는 분수를 잘 알기에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살아남아 본분을 다해야 했다. 그러다가 돌아가셨다. 마저 본분을 하시다가 그 길에서 얻은 과로로, 그 동네에서 얻은 병으로 쓰러지셨으니, 수분의 본이 아니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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