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5)
페이지 정보
작성자 차쿠지기 댓글 0건 조회 336회 작성일 21-09-07 08:52본문
겸손 (양업 영성 따라 살기 5)
최양업 신부님은 원래가 겸손한 분이다. 한국 천주교의 첫 번째가 아닌 두 번째 사제요, 아직 가경자에 머물러 있는 거로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객관적인 데이터로는 최신부님이 첫 번째 사제가 되어야 했다. 나이가 그렇고, 신학생 순번이나 학교 성적, 건강상으로도 김대건 신부님보다 앞선다. 4년이나 사제품이 늦어졌는데도 스스럼없던 동료한테까지 이에 대해 입 한 번 뻥긋했다는 기록이 없다. 오히려 사제품을 받으면서는 “이 고귀한 품위가 너무나 크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이 무거운 짐”이란 소회만 밝혔다.
겸손의 향기가 그의 육필 편지에 물씬하다. 자신의 이름 앞에 늘 ‘지극히 겸손한’ 혹은 ‘지극히 부당한’ ‘지극히 비천한 아들’이란 표현을 쓰는데, 스승을 대하는 이런 태도는 ‘엎드려 절한다.’ 고 쓴 신학생 시절이나 ‘쓸모없는 탁덕’이라 쓴 사제가 된 이후에나 변함이 없다.
무엇보다 최양업의 라틴어 실력이다. <최양업 서한집>을 판독한 故최승룡 몬시뇰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완벽한 실력”이라 했다. 156개의 단어가 들어간 하나의 긴 문장에 15개의 쉼표와 24개의 동사가 연속해서 나오는데, 문법에 어긋남이 없는 유창한 문장이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서툴고 어설프기 짝이 없는 글”이라고 낮춘다. 또 1847년 홍콩에서 번역한 <조선 순교자 행적>이야말로 교황청에 ‘시복 증빙 서류’로 보내진 명문이었다. 이때 역시 문장이 초라하고 문법에 거슬리는 곳이 많다며 스승께 교정해 줄 것을 청한다.
1854년, 이제는 최양업 신부가 배티 신학교의 스승이 된다. 페낭에 3명의 신학생을 유학 보냈는데, 페낭 교수신부님들에게 조선 신학생들을 잘 부탁한다며, 한 가지만을 주문한다. ‘그리스도의 겸손’을 잘 가르쳐달라는 것이었다.
대개 주변에서 보면, 자존감이 있고 신앙이 깊은 분들이 겸손하시다. 자존감이 있으면 무시를 당하더라도 자신을 낮출 수 있다. 그런데 그 낮춰진 상태를 지속하게 하는 건 신앙심 같다. 만사를 하느님께 모두 맡길 줄 아는 신앙의 뚝심 같다. 최양업 신부님은 애초, 부모 모두 순교한 집안의 맏이라는 자존감이 있었다. 게다가 하느님의 자비에 일상을 송두리째 맡기며 사는 신앙심 쪽으로야, 조선 안팎에 이만한 분이 있었던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