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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겸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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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쿠지기 댓글 0건 조회 336회 작성일 21-09-07 08:52

본문

겸손 (양업 영성 따라 살기 5)

 

최양업 신부님은 원래가 겸손한 분이다. 한국 천주교의 첫 번째가 아닌 두 번째 사제요, 아직 가경자에 머물러 있는 거로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객관적인 데이터로는 최신부님이 첫 번째 사제가 되어야 했다. 나이가 그렇고, 신학생 순번이나 학교 성적, 건강상으로도 김대건 신부님보다 앞선다. 4년이나 사제품이 늦어졌는데도 스스럼없던 동료한테까지 이에 대해 입 한 번 뻥긋했다는 기록이 없다. 오히려 사제품을 받으면서는 이 고귀한 품위가 너무나 크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이 무거운 짐이란 소회만 밝혔다.

 

겸손의 향기가 그의 육필 편지에 물씬하다. 자신의 이름 앞에 늘 지극히 겸손한혹은 지극히 부당한’ ‘지극히 비천한 아들이란 표현을 쓰는데, 스승을 대하는 이런 태도는 엎드려 절한다.’ 고 쓴 신학생 시절이나 쓸모없는 탁덕이라 쓴 사제가 된 이후에나 변함이 없다.

 

무엇보다 최양업의 라틴어 실력이다. <최양업 서한집>을 판독한 최승룡 몬시뇰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완벽한 실력이라 했다. 156개의 단어가 들어간 하나의 긴 문장에 15개의 쉼표와 24개의 동사가 연속해서 나오는데, 문법에 어긋남이 없는 유창한 문장이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서툴고 어설프기 짝이 없는 글이라고 낮춘다. 1847년 홍콩에서 번역한 <조선 순교자 행적>이야말로 교황청에 시복 증빙 서류로 보내진 명문이었다. 이때 역시 문장이 초라하고 문법에 거슬리는 곳이 많다며 스승께 교정해 줄 것을 청한다.

1854, 이제는 최양업 신부가 배티 신학교의 스승이 된다. 페낭에 3명의 신학생을 유학 보냈는데, 페낭 교수신부님들에게 조선 신학생들을 잘 부탁한다며, 한 가지만을 주문한다. ‘그리스도의 겸손을 잘 가르쳐달라는 것이었다.

 

대개 주변에서 보면, 자존감이 있고 신앙이 깊은 분들이 겸손하시다. 자존감이 있으면 무시를 당하더라도 자신을 낮출 수 있다. 그런데 그 낮춰진 상태를 지속하게 하는 건 신앙심 같다. 만사를 하느님께 모두 맡길 줄 아는 신앙의 뚝심 같다. 최양업 신부님은 애초, 부모 모두 순교한 집안의 맏이라는 자존감이 있었다. 게다가 하느님의 자비에 일상을 송두리째 맡기며 사는 신앙심 쪽으로야, 조선 안팎에 이만한 분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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