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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꽃 이파리는 떨어져 어디로 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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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쿠지기 댓글 0건 조회 364회 작성일 21-08-18 09:37

본문

꽃 이파리는 떨어져 어디로 가는 걸까?

 

진달래 속에서 얼굴을 내민 봄은 발그스름한 볼을 한 예닐곱 아이처럼 수줍게만 서 있었다. 성큼, 나의 창가에까지 다가와 준 것은 벚꽃 가지이다. 해발이 높은 멍에목인데다 건물로 가려진 음지쪽이라 벚꽃이 늦도록 피었다. 미사를 봉헌하는 2층 창가서 볼 때 벚꽃 이파리가 낙하하는 모습이란 살아있는 나비 같았다. 나풀나풀 어디론가 비행해 가는 거로 보였다. “꽃 이파리는 떨어져 어디로 가는 걸까?”라는 시의 제목이 생각난 연고이다. “예끼! 꽃 이파리가 떨어져 가긴 어딜 가?”라는 반문이 들기도 전에, 꽃 이파리가 떨어진 자리에서 한 소녀가 어른거렸다. 꽃 이파리가 사라진 내 심상에 떠오른 그녀는 바르바라. 최양업 신부님의 편지에 10페이지도 넘게 소개되는 꽃다운 소녀이다.

 

바르바라는 7, 글을 깨치면서 동정 생활을 결심한다. 11살이 되던 해 올케가 바느질하며 이 옷은 아가씨 혼인 때 입을 거예요.” 하자, 쪽지 하나를 남겨 놓고 사라졌다. “사랑하는 어머니, 저를 당신의 자식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동정 성모 마리아의 딸로 생각하십시오. 이 세상의 삶은 짧습니다. 모든 것이 헛됩니다. 저를 찾지 마십시오.” 그길로 또래 여아와 동굴에서 기도하다가 열흘 만에 오빠에게 붙들려 온다. 14살 첫 고해 때, 교회 측에 동정의 결심을 정식으로 밝힌다. 그러나 조선의 여인이 결혼하지 않는 것은 불효막급이란 판단만 받는다. 이때부터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면서 가사노동을 한다. 16살 때는 주교님한테까지 불려가 독신녀 납치가 성행하는 조선에서 구원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결심을 철회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 후 여러 차례 주교님 면담이 이어졌고, 동정 성모를 따르겠다는 박해지역 소녀에게 성사금지처벌이 내린다.

 

18509, 최양업 신부님은 성사를 보고 싶다는바르바라에게 자초지종을 듣는다. 숭고한 결심을 도와주지 못하는 현실에 찢어지는 듯 마음이 아팠으니혹시, 지나가는 소리라도 하셨을까? 죽을 위험에 처하면 교회법도 풀린다고. 그러자 바르바라는 성사를 보기 위해 적어온 죄목 쪽지를 움켜 든다. 중병을 앓고 있는 벗에게 사슴처럼 달려가 똑같은 말만 중얼거렸다. “나도 너처럼 아팠으면 좋겠다. 그러면 성사를 받을 수 있을 텐데.” 그러더니 진짜, 그날 저녁으로 엄청난 고열에 들었고 밤사이 사경을 헤매게 된다. 명절의 새 옷으로 갈아입고 병자성사를 받을 때 어른들이 얼마나 고통스럽냐?”고 했다. 그러자 감사를 드려야 할 텐데, 더 큰 감사를 드리지 못함이 저의 고통이라고 한다. 네가 만일 회복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하고 묻자 하늘의 천상 아버지께로 가서 마땅한 감사를 드릴 거 외에는 따로 원이 없어요.” 하는, 더 할 수 없이 평온하고 맑은 몸에서는 숨이 떨어진다.

 

하느님께 대한 이 사랑의 감정, 그 감정의 온도와 순도에 최양업 신부님까지 북받치셨다. 최양업이 누구인가? 매일같이 순교자들 틈에 사는, 웬만한 일에는 눈도 꿈쩍 않을 분이 술회한다. “바르바라가 죽은 지 열흘이 지났으나 우리의 얼굴에는 눈물이 마르지 않고 있습니다.” 최신부님은 울었다. 그리고 눈물을 훔쳐내면서는 용기백배 원기 백배하셨으니, 주님 곁에서 활짝 웃고 있는 저 사랑의 왕국이라도 보았던 것일까?

 

꽃 이파리는 떨어져 어디로 가는 걸까? 또 꽃 이파리 같은 우리네 봄의 시간은 흘러 흘러 어디로 가는 걸까? 유한하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꽃잎들이 엄연히 떨어져 가고 있다. 그러면 우리네 꽃 이파리들은 바르바라처럼 감사의 땅으로 가고 있을까? 확실히, 바르바라가 꽃 이파리가 되어 날아간 곳이란 감사의 영토임이 틀림없다.

 

분분한 낙화...... 이제 계절은 만춘에 다다른 오월의 하순이다. 얼마 남지 않은 봄날, 얼마 남지 않은 성모성월을 앞에 두고, 아직 남아있는 꽃 이파리들을 가지런히 해본다. 벚꽃이 떨어진 자리, 바르바라가 떠오른 그 자리를 든든히 지켜주시는 우리 성모 어머니, 나의 꽃 이파리들도 떨어져서 그 곁으로 가게 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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