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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굿모닝 차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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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쿠지기 댓글 0건 조회 454회 작성일 21-03-19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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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차쿠

 

몸이야 오갈 수 없지만 차쿠를 매일 만나는 길이 있다. 중국도 SNS가 발달했으니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인 것이다. 대개 문자와 사진을 주고받지만 어떤 때 영상 통화를 길게 해도 공짜이다. SNS로 만나는 인물은 대개 3명이다. 이 중 윗사람이 두 분이나 된다. 먼저는 요녕교구의 어른이신 배주교님이요, 나머지가 차쿠의 지역구 주임인 대련 본당의 유신부이다. 이래저래 만만한 사람이래야 차쿠의 허수녀가 될 수밖엔 없다. 허수녀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는 꼭 팥이 나야 하는 성품이다. 지난 1년 동안, 아침과 저녁 인사를 꼬박꼬박해 왔다.

션푸神父, 자오샹早上 하오.” 하면 한국에서도 똑같이

修女수녀님, 早上好 좋은 아침이예요.”

하면 그만이다. 두 달째 앵무새 같은 반복에는 지루해져 버렸다. 그래서 답장할 때 수녀님도라는 뜻으로 ()자 하나를 더 붙였다. 그녀 역시 회신하는 입장이 되어 라는 자를 붙이고 싶었던지, 하루는 점심이 되도록 아침 인사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먼저 修女, 早上好! 라 했더니 고 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득달같이 神父也신부님도, 早上好좋은 아침이예요!라고 자를 붙이는 것이었다.

 

산 중에 있는 최양업 신부님 사목 방문지 답사차 그녀의 인사에 답장하지 못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왜 아는 체를 안 하느냐(不理)?”고 골 부리는 정도를 넘어 역정까지 내시는데, 하아 그 열화가 바다 건너의 스마트 폰까지 달구는 것 같았다. 특히 오리의 부리를 닮은 그녀의 입은 바로 코앞까지 나타나 겁박할 것 같았다. 그날부터는 틀림없이 차쿠의 조석 인사부터 챙긴다. 기실, 그거 하나면 만사 오케이인 그녀이기도 하다. 스스로 차쿠의 관리를 더 잘하고 있다.

 

저녁 인사 역시 허수녀가 먼저 했었다. 그러면 완안晩安, 하고 답하면 되었다. 그러나 여름 해가 자꾸 길어지자 누가 먼저 인사할 것인가를 놓고 무언의 버티기가 시작되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답장하는 사람이 되어 아무개도()’라며 자를 붙이는 쪽이 인사를 받는 위치이기도 했다. 이 버티기에서는 유감스럽게 내가 손을 들고 말았다. 두 나라의 시차 때문이었다. 차쿠는 11시밖에 안 되었는데 여기서는 12시가 넘어버리면 인사말이 맞질 않았다. 그냥 먼저 완안하고 자버리는 게 나았다. 그러고 나서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누가 먼저 인사하느냐를 피차간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무나 먼저 굿모닝, 굿나잇 해도, 여간 자연스러운 게 아니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문자 하나 잘 보내 기쁨이 배가 되는 건 대련의 유신부도 마찬가지이다. 작년 성탄에 마음먹고 긴 오리털 파카를 보냈을 때도 이처럼 기뻐하진 않았다. 며칠 전 교회 용어가 긴가민가하여 SNS로 물어보았더니 하도 친절한 뉘앙스로 알려주기에 씨에 씨에, 나의 중국어 선생님!”하고 추키었더니, 신나서 방방 뜨는 이모콘과 문자 하나가 날라왔는데 나는 좋아 죽는다!” 였다.

 

배주교님도 매한가지이다. 주량이 세다는 소문이 자자해 누가 큰맘 먹고 사다 준 양주를 고스란히 선물했다. 발렌타인 30년산보다 좋은 거라고 해도 희색만면하지는 않았다. 그해 부활 때 계란 바구니나 하나 드리면서 주교님, 직접 키운 차쿠 닭이 낳은 거예요. 굵은 거로만 골라 왔지요.” 하니까 고마워 어쩔 줄을 모르셨다. 한 해 동안 고맙다는 인사를 세 차례나 받았다.

 

굵은 알로만 골라 왔다는 말이 듣기 좋으셨을까? 또 유신부만 해도 중국어 선생님.’이란 한 마디가 그리 둥둥 뜨게 만들었을까? 굿모닝, 굿나잇! 허수녀한테는 이 간단한 문자 하나가 끼니보다 더한 일용할 양식이었을까? 그러고 보면 말 한마디에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더 담아지나 보다. 이제부터 말 한마디도 온유해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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