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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사순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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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쿠지기 댓글 0건 조회 358회 작성일 21-03-19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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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무렵

 

굳이 시적 대구와 운자로 어휘를 고른다면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소위 당당허당사이를 오가며 살아온 시계추 같은 세월이다. 때로는 당당함이 지나쳐 우쭐거렸고, 때로는 허당같이 풀이 죽어, ‘좌 당당’ ‘우 허당사이를 오갔다. 물론 무슨 일을 벌일 때 주님의 뜻이다. 교회를 위해서이다.”라고 과대 포장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당당하고 싶은 속을 말끔히 비운 적도 없다.

 

이는, 그 뿌리가 깊다. 어릴 적 코흘리개가 공부했던 것도 우등상이 주는 당당함 때문이요, 냇가에서 놀다가 물고기라도 잡아 올 땐 보무가 당당했다. 운동장에서 공놀이하던 아이가 신학생, 부제로 성장하여 교구 대항전을 벌일 때도 마음의 뿌리는 당당한 데에 잇닿았다. 본당을 맡다가 중국행을 한 것도 솔직히 같은 연유가 섞였다. 장차 차쿠의 일이 잘되면 교구 안에서 당당하지 않을까, 하는 속내였다.

그렇지만 세상일이 뜻대로 되는가? 2016년 차쿠의 건축을 완공하고 한국 순례객 미사까지 허락받았을 때, 2017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사드 미사일이 한중관계를 냉각시켜버렸다. 이번 코로나도 마찬가지이다. 차쿠ㆍ백가점이 최양업ㆍ김대건의 공동사적지라, 탄생 200주년을 맞아 예약된 순례팀이 많았다.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차쿠에 가지도 못한 허당의 시간을 살고 있다.

 

그런데 또 대인관계로 볼 때는 너무 당당한 것보다 허당한 게 낫질 않은가? 인간관계의 꽃이라 볼 수 있는 부부지간이 그렇다고 한다. 가령, 남편이 평생 다른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유세가 대단한데, 이런 고자세보다 약점 잡혔더라도(큰 허물이 아닌 이상) 나긋나긋하고 허당스러운 스타일이 좋다고 들었다. 가보지도 못한 부부의 길을 가타부타하는 것은 나 역시 질러가는 관계의 길하나를 매일 가니, 하느님과의 동행이다. 어떤 때 나름 잘 살았다 여겨져 당당하다 못해 교만까지 오르니, 그로 말미암아 이내 허당에 떨어질 일이 생기고 만다. 어쨌든 하느님께서는 계속 겸손하라 하시는 것 같다. 그래야 뭔 일이 잘 안되어 허당에 떨어질 때, 높게 까불려져 흩어지던 정신을 낮게라도 응결시킬 수 있으니, 당당보다는 온당하라 하시는 듯하다.

 

최양업 신부님은 만사가 꼬여 힘들더라도 우리가 분노의 그릇이 되지 말고 하느님 자비의 아들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침내 언젠가는 만나 뵙게 될 하느님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도 뵙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며 허당마저 지금 여기의 꽃자리로 여기라 말씀하신다.

 

제아무리 떵떵한 집안에 태어나 당당히 살아온 이라도 한번은 떨어져야 할 허당의 구렁이 있다. 죽음이다. 죽음에 대해 <인생피정>이라는 책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죽기 전에 죽으면, 죽을 때 죽지 않는다.”

 

벌써 사순절 무렵이다. 이번 수요일에 재를 바르는 예식도 이다음 한 줌의 재가 되기 전에 미리 재가 되어, 재가 될 때 정녕 재로 끝나지는 말잔 뜻이 아닌가? 지금 이 말은 내 귀에 이렇게도 들린다. “당당할 때 허당할 줄 알면, 허당에 떨어질 때 당당함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늘 당당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허당 구렁이 있다. 그게 인생의 진실이라고 말해오는 사순절에게 나도 이제 좌당당 우허당하지 않고, 그사이에 있을 천당에만 관심이 있다고 대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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