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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송년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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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쿠지기 댓글 0건 조회 559회 작성일 20-12-2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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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편지

 

 

매서운 이 한파 속을 살얼음보다 조마조마히 지나는

그대여,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한숨뿐이라면

나는 그대 삼킬 눈물까지도 떨구어 주겠네

뚝 떨구고 올려다본 하늘 자리

그 앞에 서 있는 겨울 감나무 한 그루, 거기 아직

하나, , , ... 붉은 심장처럼 매달린 홍시들

그러나 이때가 되도록 몰랐었네

홍시 사이로 내려와 계신 저 하늘

 

화무십일홍, 열흘 붉은 꽃 없다 할 때

진작 알았네, 꽃보다 열매인 줄은

잘 익은 열매 됨이 꽃보다 꽃인 줄은

과일이 더 향기로운 줄은 이미 알았었네

그러나 몰랐어라 한 해가 다 되도록

꽃이 피어날 땐 그 꽃 이파리 보느라

꽃이 떨어질 땐 그 꽃 이파리 쫓느라

정말 보고도 알지 못했네

무궁 하늘이 가지 끝에 내려주심

꽃잎이 진 다음

잎사귀 진 다음

가지에 열매나 걸린 이 겨울에야 아느니

창천 하늘께서 뒷배경도 해 주심을

배경으로만 못 계시어 성큼 내려오심을

시퍼렇게 기다리시다 붉게도 품어주심을

 

한파보다 더한 이 코로나 속을

살얼음판처럼 아슬아슬 걷는 그대여

뻔한 말이나마 메시지 하나 보내려다

그래도 연말연시 아니냐며 썼다가 말았다가

어찌할 줄 몰라 올려다본 저 하늘 자리

감나무보다는 멀리 성당 종탑이 있고

거기 성탄의 별이 전에 없이 간절하시네

 

 

2020년을 온통 빼앗겨서 그럴까, 그대나 나나

할 말을 잃었다. 각자도생하자며 멋쩍게 웃었지만

점점 두 개의 겨울로 내몰리는 그대

무슨 입을 열어 감히 말할 수 있을까요

차라리 허공을 보려다 본 감나무의 하늘

말라가는 홍시들은 몇 개의 기도 말 같아

나무둥치째 토해낸 염원을 붉게 빚어 올리니

비로소 푸른 하늘에 맞닿게 되었구나

마치도 그렇게 보일 때는 나도 할 말이 생겼지요

 

자꾸 하고 싶은 최양업 이야기요

160년 전 경신년에도 역병이 돌았대요

수천 명을 앗아간 콜레라 끝에 덮친

장티푸스 그리고 사제만의 집중 군난

그해의 딱 이맘때도 겨울은 두 개였습니다

역병 속 박해인지 박해 중 역병인지

뒤쪽 추적, 앞쪽 전염, 모두가 비정한데

그런데도 이 겨울을 나선 사명이 있었네요

사명을 끝까지 걷고자 했던 사나이, 그 얘기라면

조금 말이 될 듯하여 이렇게 몇 글자 써 보냅니다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자비를 잊지 마소서, 저희 눈이 모두

당신 자비에 쏠려 있습니다

희끗희끗 눈발 날리던 겨울 감나무 위, 백설 아래

홍시 역시 차가울수록 붉게 사무치는 말을 올렸을까

쫓기다 몰리고 몰리다가 쫓기어, 더는 기댈 곳도

바랄 것도 없는 세상에, 백설처럼 새하얘진 정신은

붉게 익은 기도말 몇 마디만 걸어놨도다, 160년 전

최신부님의 송년 무렵도 더하면 더했다는 얘깁니다

 

코로나보다 추위보다 더한 경제 한파 속을

성탄 미사마저 그저 그렇게 건너온 그대여

지난 한 해의 열매랑은 그대 하나로 족하오

2021년 붉은 태양을 새 희망으로 함께 맞이할

가족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하시오

최양업처럼, 동토 위에서 감나무 끝까지

붉게 빚어 올린 홍시처럼, 송년의 단심丹心 일편을

매단 것으로 그대나 나나 족하다 여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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