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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길 위에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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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쿠지기 댓글 0건 조회 415회 작성일 20-11-27 17:52

본문

길 위에서7 집처럼 성전처럼

 

최양업 신부는 길 위에서 살았다. 한강 이남의 127개 공소를 도맡아 순방하는 바람에 매년 7천여 리를 걸었다. 길바닥을 집처럼 여기고 살았다.

 

그는 조선의 계몽사상가이기도 했다. 계몽이 이성의 빛으로 인간의 무지를 밝혀 천부적 인권을 일깨우고, 신분계급(14번째 서한, 중반부) 및 미신을 타파하여 인류사회를 개선하는 일이라면 최양업의 길이야말로 계몽 여정의 전형이다. 최초 서양 유학생으로 1837년부터 12년간 대영제국 홍콩의 문물을 익히고 돌아온 그에게, 양란 후 곪을 대로 곪은 조선의 말기병적 증상은 고스란히 투시된다. 먼저 (굶어 죽으면 죽었지) 결코 일하지 않고 착취로 살아가는 양반계급이다.(11번째, 중반부) 가렴주구로 백성을 짓밟고(7, 중반부) 노름과 폭음, 추잡한 연회로 자신까지 죽이는 (9, 중반) 양반들이야말로 온갖 사회악의 근원이니, 인재 등용 시 출신성분이 아닌 능력 위주로 뽑을 것을 제시한다.(12, 중반)


미신타파에 관해서는 두말이 필요 없다. 천주학 자체가 빛이었다. 집집마다 장독대의 귀신단지를 소제하고, 음습한 속에 요요히 인심을 미혹하는 마귀로부터 해방(13, 중하단)시키는 일이 최양업의 길이었다.


세계정세를 선각하고 미래로의 첫발을 뗀 선구자로서 개항에 대한 고뇌는 차치하고라도, 한 지도자로서 (한없이) 가슴이 미어졌던 데는 여성들의 처지였다. 동정 생활을 불효로 매도하고, 과부를 납치하는(7, 중반) 인습 아래, 부모와 남편에게마저 억압받는 조선의 여성들(18, 중하단)에 극도로 마음이 아팠다.


최양업이 계몽사상가인 것은 무엇보다 본인이 자부하는 바이다. 백성들을 합리적으로 가르치자며 자신이 계몽을 정통으로 잇는 자(14, 중하단)라고 칭한다.

 

성전 오른편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보았노라

, 라떼라노 대성전 미사를 봉헌한 끝이었다. 이제 이 미사를 끝으로 슬슬 가르멜 수녀원을 떠날 채비를 해야 한다. 봇짐 싸기 직전에 위의 글을 써서 그런가? 자연스레 이란 단어가 떠올랐고 최신부님의 이야말로 성사집전 외에도 계몽하는 길이었음이 유추되었다. 그러다가 퍼뜩 을 집으로 여긴 정도가 아니라 성전 삼아 사신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다다랐다. 바로 오늘이 성전 축일인 까닭이다. 거기다 코로나 때문에 차쿠에 가지 못하고 여기저기 거처를 바꾸는 상황까지 보태졌으니, 불어날 대로 불어난 생각덩이였다. 그 와중에도, 길 위에 있다는점만 본다면 내가 최신부님의 생활을 흉내 내는 건 아닐까, 억지로라도 이렇게 밀어붙이고 싶었다. 물론, 다르다! 세 가지가 아주 달랐다! 첫째로 최신부님은 박해 속에서도 성사를 주러 다녔지만 나는 이래저래 받고만 다닌다. 둘째, 걸어 다니셨지만 나는 차 타고 다닌다. 셋째, 신부님은 계몽의 길인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생각이 여기에 달했을 때 진짜, 최신부님이 을 성전처럼 여기질 않았을까, 하는 심증이 굳어진 것이다. (당시 멈춰 서신 길목이 성무집전의 장소였다!) ,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야 나도 말해 볼 여지가 생기는가? “성전이라는 수렴점에서야 최신부님의 행로와 겹쳐지는 점이 있다. 그 물이 가는 곳마다 모든 사람이 구원되어 노래하리라 그렇다면 나도 내 안에 있는 성령의 성전”(1고린6,19)에 생생한 물길을 대보려 여기저기 다닌다고 말해도 된다. 만민에게 구원을 주는 성전이나 내 안의 성전이나 같은 성전이라는 바오로 사도의 보증이 있었으니까. 이렇다고 본다면 뭐 어떤가? 성전 오른편에서 만민을 향해 성사를 주다가도 이런 시절엘랑 성전 왼편에서 자기 성전 하나 관리해도 되질 않겠는가? 혹시 또 아는가? 나도 이 하루라는 길 위에서 이웃을 성전 안에 모셔 들이듯이 맞을 수 있을지. 그리고 또 아는가? 머리로만 계몽되었지 실천이 따르지 못한 자리에 사람 존엄’, ‘참된 신앙을 일깨우는 그 계몽의 빛을 조금 밝혀볼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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