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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냉장고 비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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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쿠지기 댓글 0건 조회 379회 작성일 20-11-2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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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비우기

 

잡탕찌개라 해도 좋고 부대찌개라고 해도 좋다. 일단 꽉 찬 냉장고를 비워낸다는 게 후련하다. 벌써 보름 전에 먹다 남긴 삼겹살 조각들, 그때 같이 구웠던 소시지 도막, 그리고 혹시나 해서 모아두었던 배추김치 국물. 그냥 놔두자니 냉장고 속이 어지럽고, 내버리자니 환경의 오염원이다. 거기다 열흘째 시드는 저 양송이를 어쩔건가?

에라, 모르겄다. 다 집어넣자!”

국 요리에 대담해진 것은 순전히 육수 알약때문이었다. 멸치, 다시마를 비롯하여 열 가지가 넘는 식재료의 엑기스를 분말화하여 환으로 빚었다는데, 손톱만 해도 이게 만능이다. 어떤 국이든 맹물에 한두 알 넣으면 끝이고, 정 자신 없으면 슬쩍 하나 더 넣으면 그만이다. 콩나물국 된장국 김치찌개 미역국이 다 웬만큼은 엇비슷했으니, 급기야 부대찌개까지를 도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부대찌개 하나를 끓이면서 소위 살림하는 재미까지 맛보게 될 줄이야. 첫째는 냉장고가 비워져서 숨통이 트일 것이니 이른바 살리는 살림의 맛이고, 둘째는 환경을 살린다는 명분도 쏠쏠하다. 셋째는 뭐니 뭐니해도 찌개의 맛일 텐데, 어설퍼서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바에야 잡탕이라도 짜지만 않으면 되겠거니, 하며 인덕션 불을 은근히 살린다.

 

이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기분인데, 기실 5년 전 중국 심양에서는 이보다 훨씬 고조되었다. 김광명 신부님의 유품이 도착했을 때이다. 평생 소장해 오시던 제의들이었는데, 한국에 놔두면 불태워졌을 걸 중국 신부들의 남루한 제의가 떠올랐을 때는 뭔가 후끈 달아오르는 게 있었었다. 며칠 후 세탁소에 맡겼던 것을 방안에 바자회처럼 진열해놓고, 먼저 요녕교구의 주교님과 총대리, 신학교 학장부터 초대했다. 마음대로 두세 벌 챙겨가라고 하자 와아!”하는 탄성이 나왔다. 바로 이어서 한국 소주에다가 삼겹살을 구었을 때는 잔치가 따로 없었다. 아무튼 제의 파티는 삽시간에 소문이 났다. 어떤 신부는 한 벌 더 없냐고 노골적으로 다가왔다.

 

장담컨대, 대륙에 아직 남아있는 한류 중, 그 으뜸은 성물, 제구, 제의 등 교회 용품에 대한 열망이리라. 한류 음식도 시큰둥해졌고. 드라마도 예전 같지 않고, 음악도 한물갔다고 혹자가 말할지라도, 교회 용품만은 여전히 인기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제병기이다. 중국은 대놓고 제병기를 제작할 수 없으니, 토요일이면 으레 각 본당에서 찹쌀인지 멥쌀인지를 찐다. 흰밥을 다식판 같은 데다가 으깨어 문대는데, 약간 구워졌다 싶으면 하나하나 빼내 주일미사의 성체로 사용한다. 참말로! 이 제병기 분야만큼은 100년이나 뒤처진 것 같다. 그러니 당연히 10여 년 전, 제대로 된 제병기를 선물 받을 때는 기절초풍할 듯 좋아했다. 당시, 충주 가르멜 수녀원에서 전자동 시스템 제병기를 구축했다고, 그때까지 쓰던 제병기 2대를 공짜로 주었다. 나로서도 뛸 듯이 기뻤다. 즉시 선박 운송으로 중국에 배송했었다. 그리고 10여 년이 흐른 지금, 제병기는 여태껏 왕성하게 돌아가고 있다. 내몽고 자치구 내 여러 교구에서 사용하는 제병을 공급한다니, 그네들의 말처럼 건물 한 채를 지어 준 것보다 더한 아이디어 원조였다. 도랑 치다 가재 잡은 정도가 아니라 금광석을 주운 폭이다.

 

계절이 깊어간다. 이러다간 바로 을씨년스럽거나 스산해지겠다. 이런 계절에는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라는 어느 시의 제목처럼 그리움이 그리움을 향해 손짓하도록그냥 나를 놔두고만 싶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려 더 찾을 것도, 더 채울 것도 없게. 내 안에 이미 있는 것들, 내 냉장고 안에 있는 것을 마저 쓰고, 마저 비워내고만 싶다. 비워내면 그 속에 그리움이라는 님도 빠끔히 모습을 드러내시려나? 마침, 이 계절의 상이 또한 그러하다. 나무들만 봐도, 새로 가져다가 쌓기보다는 있는 것을 하나둘씩 떨구어 내고 있질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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