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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불 끄고 별 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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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쿠지기 댓글 0건 조회 388회 작성일 20-09-2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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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끄고 별 켜다

 

창밖에 가을이 왔다. 찌르찌르 풀벌레 소리에도, 구구꾸꾹 산비둘기 소리에도 흔들릴 것 같은 나무 이파리가 청량해진 바람에 한껏 나불거린다. 그 바람이 방안까지 들어와 사람의 마음을 건드렸다.

이렇게 계절이 대낮부터 수작하다가 어느새 온 어둠일랑은 내쫓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 저녁이 어느 고즈넉한 두메의 외딴집이라도, 아니면 도심의 한 아파트 단지라도 좋다. 혼자 쓰는 방 한 칸만 있다면 잠시 숨을 돌리고 뚝, 전등을 꺼보라 하고 싶다. 불이 꺼지면 창이 켜진다. 바깥의 세상이 켜진다. 거기 교교히 흐르는 달빛은 사람을 호리고, 형형한 별들은 설렘처럼 총총하더라도,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 헤드라이트이면 어떻고, 옆 동 아파트의 전등 빛이면 어떠하랴! 요는 꼭 나가지 않아도 바깥과 하나가 된다는 기분이다.

내가 불을 끄고 창을 보는 시간은 대개 묵주를 들고 있을 때이다. 이왕 밖으로 나가 산보를 하면 더 좋겠지만, 불을 끄는 것만으로 외부의 세상이 빨려온다. 방안으로 달려와 하나가 되는 느낌이다. 비가 오고 있다면 그 빗속을, 눈이 내린다면 그 쌓인 눈 위를, 일단 소등하기만 하면 바깥처럼 여기게 해준다. 어둠 속의 고요에 홀로 깨어 있는 느낌도 좋다. 그래서 어떤 때 전등만이 아니라 휴대폰까지 뚝 끄고 싶은 거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럴 수는 없지만.

 

기실 나 같은 사람에게 스마트폰의 쓰임새는 엄청 많다. 어디서건 이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고, 어떤 길이든지 실시간 빠른 길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이다. 텃밭을 가꿀 때 어깨끈 가방에 넣어 FM을 틀면 거기가 클래식 공연장이요, 조그만 방안에서는 수백만 원짜리 오디오 시스템이 부럽지 않다. 무엇보다 역사 답사할 때 스마트폰 만 한 게 없다. 최양업 신부님의 방문지에 가서 되는대로 카메라를 눌러대고 몇 글자 저장한다. 차후 시간이 나면 보충하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 노트로서도 매한가지이다. 거기다가 국어사전, 유의어 사전, 중국어 사전 검색 등 못할 게 없다. 주유소 결재에다 은행 업무는 물론 고속버스표를 예매하고, 그 타고 가는 버스 안에서 기도문까지 펼쳐주니, 그야말로 도깨비방망이가 따로 없다. 이렇게 유용한대도 이런 가을의 밤에 가만히 불을 끄고 있노라면, 스마트폰마저 뚝 끄고 싶다.

 

청주의 양업고등학교에는 휴대폰 없는 한 학기가 있다고 한다. 신입생이 입학하면 휴대폰을 거둬들이는데 압수라는 말이 나지 않는 건 학생자치회에서 자발적으로 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년 전 학부모님들의 건의가 쇄도했다. 한 학기가 아니라 일 년 내내로 연장하자는 거였다. 학교 측도 은근슬쩍 그러고 싶었는가 보다. 학과 일정에서 한 학기를 두 학기로 고쳐 쓰면 되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난리가 났다. 차라리 죽음을 달라, 까지는 아니었지만 어른들의 은근슬쩍을 확 뒤집기에 충분했다. 그러면서도 신입생다운 애교만은 잊질 않았으니 스마트폰이 없어도 할 것이 있더라. 다른 세상이 있더라. 스마트폰보다 재미난 세상이 있더라. 바로 옆 친구요 대자연이더라.”라 후기했다고 한다.

 

두둑 도르르 두둑

막 어둠이 깔리고부터 청량한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뭇잎 위에 떨어지는 소리, 둥치로 미끄러지는 소리, 바위 위에 부서지는 소리, 흙 속으로 사무치는 소리 등 여러 소리가 모여 비 내리는 가을 숲을 합창해 낸다. 두두둑 저 밤비 내리는 소리! 그래서 나는 또 전등을 끄지 않을 수 없다. 그러자 성큼 오는 바깥세상! 밝기가 같아진 것만으로 다가와 일부가 된다. 비에 젖을 리 없는 방안이지만 마음은 속속들이 젖어 후두둑 비 맞는 숲속에 든 듯하다. 이런 때야 사춘기 시절부터의 난제 하나가 소슬한 바람처럼 스치는가? “대체 우리는 어디서 와서, 또 어디로 가는가?”

하아, 아무리 계절 타는 밤이건만 그래도 순교자 성월, 묵주까지 돌리고 있다가 흐리멍덩한 생각이라니, 이 무슨 변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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