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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닭관찰기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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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쿠지기 댓글 0건 조회 427회 작성일 20-07-30 07:13

본문

닭관찰기7

 

앙업고등학교 옆 산기슭에는 수탉 한 마리가 살고 있다.

1년 전, 그 닭을 보았을 때 참 딱했다.

절름발이인데다 닭무리에 끼지 못하고 혼자 떨어져 살았다.

6개월 전, 그 닭을 보았을 때 참 용했다.

절룩거리면서도 아직 살아 있었다. 홀로 사는 법을 터득한 것 같았다.

그리고 며칠 전, 그 닭을 보았을 때 참 장했다.

선홍빛 벼슬에서 갈기를 타고 꽁지까지 기름이 좔좔 흘렀다.

 

석 달 전, 절름발이는 정말 독거수탉의 처지가 되었다. 닭무리가 아예 뒷산으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대장 자리를 놓고 다투다 골절상을 입었으리라. 쫓겨나기까지 한 신세였지만, 먼발치에서나마 의지가 되었던 닭무리였다. 그런데 꼬끼오!란 소음에 매일 밤잠을 설친다는 학생들의 볼멘소리가 있었고, 학교 측은 부득불 이사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게 이사 작전으로까지 번진 것은 순전히 특별한 내력 때문이었다. 사람만 다가서면 혼비백산하는 닭무리의 내막이 없지를 않았다.

 

기실, 몇 년째 성당과 체육관을 신축해온 교정이었다. 공사장 인부들이 끊이질 않았다. 그분들이 보기에 운동장이고 산기슭이고 꼬꼬댁거리며 다니는 요런 토종들이야 여름철 보양식 감이었다. 아무 데나 흘리고 다니는 달걀을 주워 먹는 재미에서 삼계탕에로까지 군침이 튄 것이다. 아무튼지, 절반 이상의 닭들이 그렇게 사라져가자 살아남은 닭들은 극도로 사람을 꺼렸다. 푸드덕, 수직으로 비상하여 사람 손이 닿을 수 없는 높이까지 도망칠 때는 닭인지 새인지 분간이 안 갔다. 사료 먹을 때만 나무에서 내려왔다고 했다. 그러다가 그 높은 가지에도 오르는 족제비의 습격이 잇따르자, 밤에도 내려와서 철망 안에 피신했다고 했다. 그렇게 사람한테 잡히고 족제비에게 당해, 3마리밖에 안 남아서는, 닭장의 역사가 영 끝나버리는 줄 알았다. 그러할 때, 어디서 어떻게 자연부화를 시켰는지 암탉 한 마리가 12마리 되는 병아리를 까왔고, 삐악삐악! 새로운 역사가 이어졌다고 했다. 지금 한창때의 산란계나 대장 수탉, 절름발이가 그 병아리들이었을 것이니 오죽 날래고 잽싸랴! 뒷산에 아무리 럭셔리한 닭장을 새로 짓고 이사해 준단들, 순순히 잡혀줄 리 만무했다. 결국 야간 포획 작전이 펼쳐졌는데, 그 밤에도 절름발이 한 마리만은 바깥에서 자는 바람에 이주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닭무리가 떠나고 난 자리에 홀로 남은 절름발이는 더욱 은신하여 들어갔다. 꼬끼오! 이따금 살아있음의 표시로 계명鷄鳴이나 일성一聲할 뿐, 좀처럼 모습 보여주는 법이 없었다. 전설 속으로나 드나드는 조류처럼 꽁지 털 그림자조차 비추질 않았다. 며칠 전까지도 그래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묵주를 들면 사람의 걸음걸이가 안정되는 까닭인가. 그러다 멈춰서서 움직이지 않고도 무심할 수 있으면, 주위의 사물과 관조라는 거리가 생기나 보다. 그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무념무상이 만만해 보였을 거다. 홀연히, 저만치서, 절름발이가 얼굴을 내민 것이다. 나 역시 너 신경 쓸 여념이 없다는 투에는 성큼 나서며 자태를 보여주는데, 황홀했다! 하마터면 봉황의 사촌이라고 부를 뻔했다. 얼마나 자기 관리를 했는지 눈부신 갈기부터 발톱까지 생기가 넘쳐흘렀다.

꼬끼오!

그때였다. 뒷산으로 이사간 대장의 소리가 들려왔다. 흡사 그 소리 안에는 또 다른 내력이 첨부되어 있음이었다. 뒷산은 뒷산대로 이사를 마치자마자 일대 참사를 겪었으니, 족제비가 아닌 너구리로 보이는 소행에 3마리나 되는 암탉이 또 희생되었다. 그즈음 닭장 안은 누가 봐도 지리멸렬할 참이었다. 그런데 보름 후, 죽은 숫자로 처리되었던 암탉 한 마리가 다시 10마리의 병아리를 이끌고 재귀환한 것이다. 꼬끼오, 막 들려온 뒷산 대장의 계명은 바로 이런 소식을 전한다는 일성 같았다.

 

꼬끼오!

어느덧 시야에서 사라진 절름발이도 숲속 어디선가 알았다고 화답한다. 서로 떨어져서야 계명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 듯하다. 생명 충일한 그 절름발이의 소리에 내 묵주 돌리던 손도 잠시 멈춰지고 말았다. 생명生命이라는 두 글자가 나름대로 이해되어 왔기 때문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하라는 명! (절름발이라도 어떡하든) 살아있으라는 명령이다.

 

꼬끼오!

양업고 옆 산기슭에는 절름발이 수탉이 끄덕없이 산다. 아니, 서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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