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길 위에서 4

페이지 정보

작성자 차쿠지기 댓글 0건 조회 391회 작성일 20-06-29 09:22

본문

길 위에서 4


션푸神父, 봐봐요! 예쁘지요?”


요즘 부쩍 몸은 한국이지만 마음은 중국 차쿠에 있게 된다. 허수녀가 웨이신(중국 카톡)으로 보낸 뜨락의 꽃 사진이 정말 바다 위를 날라와 코끝을 톡 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중국 장미라 할 수 있는 월계화의 그 내음은 헤퍼 뵈는 꽃잎 크기만큼이나 주체못할 장미향이다. 펑펑 내주고도 맘 좋게 웃고 있는 빨강 분홍 노랑 다홍의 꽃송이가 백옥 성모상으로 만개했는데 저 저 저, 무진장한 향취에는 성모님도 어질어질하실 테다. 지면에 상록 패랭이를 들입다 뿌렸더니 야무지게 피어나던 것들조차 함부로 흐드러져 베이스의 음률처럼 바닥으로 물든다. 뜨락의 정원사로서 그 속에 묻혀 있기를 좋아했다. 성모상 뒤편 병풍처럼 세워놓은 마흔 개의 봉()에 넝쿨을 잡아매는 일이 고작이었지만. 부챗살 같은 사이사이에서 불원 소프라노 같은 높이로 방긋방긋 봉우리 내밀 걸 상상하며, 느릿느릿 시간 끌기를 좋아했다. 넝쿨의 그 높이에서 드디어 성모님의 머리칼에 월계화가 피어난 사진이었다. 저 넝쿨은 이제 첫눈이 오도록 연방 피어나며, 성모님의 코끝까지 톡 쏘아줄 것이다.

 

션푸 또 봐봐요! 닭들도 과수들도...”


허수녀가 변했다.

내가 뜨락의 이랑과 고랑 사이에서 분주할 때 소 닭 보듯 하던 그녀였다. 어쩌다 바깥 일 좀 도와달랄 눈치에는 없던 집안일까지 만들어 댔다. 그런데 사진을 보아하니 밭일하는 맛에 흠뻑 빠진 것이다. 이래라저래라 주인 행세하는 외국 신부가 없어서일까? 그녀는 한 마리 꿀벌처럼 날고 있다. 온 산에 만발한 꽃을 다니며 꿀 따기에도 여념이 없어서는, 일체의 잡념마저 불허하는 꿀벌의 복된 몫!


닭들이 션푸 얼굴 다 잊어먹겠어요.”

해서, 션푸 사진을 보여줄까 봐요.”


사람 변한 게 확실하다. , 이렇게만 도와준다면 차쿠 뜨락 관리에는 별문제가 없다. 도대체, 그러면, 무엇이 허수녀를 바꾸어 놓은 걸까? 뜻밖의 좋은 변화에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메시지 답장할 때 혹시 내가 먼저, 작게 변화된 말투를 보낸 연고인가? 가령, 월계화가 보기 좋다고 하면서 그 앞에, 와우! ! 오우! 하는 감탄사 하나를 가한 덕분인가?

허어 허수녀의 메시지가 또 온다.

 

션푸, 어서 빨리 귀가하세요, 차쿠의 집으로!”

 

, 어떤 사람한테 집이란 그저 건물이다. 편안하면 된다.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으면 된단다. 어떤 사람한테 집은 가족이다. 사랑하는 이의 품이 보금자리이다. 어떤 사람은 을 집 삼아 살기도 한다. 일에 매달리다가 또 다른 일을 찾아 새 둥지를 튼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 집이란 참다운 나와의 관계이다. 이게 끊어지면 집이라도 집을 나가고 싶고, 식구라도 낯설어지고, 하던 일마저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 특히 요즘 아이들한테 집이 되려면 긴요한 것이 하나 있지 않을까? 와이파이든 데이터든 인터넷이다. 아이들만 그런 게 아니라 나 역시 인터넷 바둑을 1판 정도 둬야 하룻길을 마치고 귀가한 것 같으니, 남 이야기만도 아니다.


집은 내 베개가 있는 곳이지요, 라고 했던 선교사가 생각난다. 우리 천주교 신부들의 집 정의역시 다르지 않으니, 소임지가 집이다. 그리 보면 나의 집은 차쿠이다. 모국에 돌아와 이국의 집을 그리워하다면 영 말이 안 되는 걸까? 사실 차쿠에 급한 일 하나가 있기는 하다. 바로 월계화 묘목이다. 작년 늦가을, 바람도 한 점 없는데 쪽빛 하늘에서 우수수 노란 은행잎이 떨어지던 날, 꺾꽂이해놓았다. 300여 개가 겨우내 뿌리를 내리고 싹을 올렸는데 그걸 심는다면, 차쿠 울타리야말로 몇 년 안에 세상에 둘도 없을 터다.

 

할 수 없이, 이 일을 허수녀들에게 부탁하려 한다. 명령조 대신 공손히 말하면 일을 마치고 사진까지 보내줄 인품들이다. 이리되면 차쿠에 있지 않으면서 차쿠의 일을 하는 셈이다. 소임지에 있지 않으면서 소임을 할 수 있다면 이런 얘기가 가능하다. 소임지보다 중요한 게 소임이요 소명이라고! 차쿠에서조차 못한 차쿠다운 삶을 산다면 그곳이 더 차쿠라고! 어디든 소명에 찬 길 위라면 거기가 집이라고! 막 노을이 드는 차쿠 쪽 서천西天을 바라보다 이내, 발치 아래 길 위로 집중한다. “‘최양업의 길이라면 어디든 차쿠행이라 중얼대며, 다시 한 걸음을 떼어보는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