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좋아 엄마 좋아

“대건 오빠가 좋아요? 양업 오빠가 좋아요?”

차쿠에 한국 수녀님들이 단체로 방문하면 강론 신부의 말투부터 달라진다. 제대 양쪽으로 백가점의 김대건 신부님과 차쿠의 최양업 신부님의 사진이 대문짝만한데 코앞에서 물어대니 수녀님들도 난감할 수밖에. 아빠 엄마 중 누가 좋냐는 식에 이어진 정적은 그러나, 최근 들어 금시 깨어지곤 한다.

“양업이 오빠요!”

요새는 한 번 잘해주고 떠나는 이보다 오래도록 다정히 함께 해주는 스타일이 대세라는 부언이다. 김대건 신부님의 사목생활은 6개월도 채 안 된다. 해로를 개척하다 체포되어 순교하셨다. 이에 비해 최양업 신부님은 12년 동안이나 동고동락하셨다. 한강 이남 전 지역을 도맡는 바람에 한 달에 (팔다리 뻗고) 잠을 잔 게 나흘밖에 안 될 정도다. 그 바쁜 중에도 단 한 명의 고해자를 위해 장시간을 엿보다가 007작전처럼 성사를 주기도 했다.

3월 1일, ‘대한 독립’을 외쳤던 삼일절은 최양업의 탄생일이기도 하다. 같은 해 8월 21일 태어나신 김대건 신부님보다 앞선다. 중요한 건 소위 신학생 오르도(순번)일 텐데, 이 또한 2월 6일로 김대건의 7월 11일(선서)보다 엄연히 앞선다. 부제 최양업 역시 부제 김대건에게 밀릴 게 없었다. 건강이 그렇고, 학교 성적도 더 우수하였다. 키가 좀 작은 걸 빼놓고는 객관적인 사료로 보아, 마땅히 최양업이 한국의 첫 번째 사제로 자리매김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왜 김대건 신부님이 4년이나 먼저 사제품을 받았을까? 이런 임의로운 얘기들이야 지면을 통하기보다 차쿠 같은 데서 육성으로 듣는 게 물론 흥미로우리라!

작금이 박해시기는 아니라 그럴까? 중국인들마저 치명자 김대건보다 증거자 최양업에 더 감동한다. 재작년 8월 15일, 120킬로 떨어진 ‘쉬우옌’(천연옥玉 산지)에서 75명이 차쿠를 방문했다. 안산鞍山 측에서 고작 1년에 1번(부활 아니면 성탄)만 방문 미사를 해주니 성모승천일랑은 성지에서 보내고 싶었단다. 대련의 중국인 보좌신부가 급파되어 미사를 집전했고, 나는 그저 두어 시간 ‘사적지 안내’만 맡았었다. 성 김대건에 대해 설명할 땐 맨숭맨숭 멀뚱멀뚱하였다. 그러나 가경자 최양업에 대해 떠듬거리는 중국말을 이어갈 때는 여기저기 훌쩍거리는 소리가 났다. 강건했던 마흔의 생명이 길에서 살다 길에서 마쳐졌다고 하자 바깥 노인들도 눈시울을 적셨다. 그 고된 육신이 소진되어 흙먼지처럼 길바닥에 내려앉았다고 할 적엔 엉엉 울기까지 했다. 그렇게 1박 2일을 지내다 돌아갔고, 그러고는... 작년 사순절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2019년 봄, 성주간을 지내겠노라고 차쿠에 온 대련 보좌가 어디 다녀올 데가 있다는 거였다. 통상적인 인근 공소의 방문인 줄로만 알았다. 이튿날 저녁에 돌아온 젊은 신부의 얼굴이 상기되었는데, 세상에나! 한 번에 60명이나 세례를 주고 왔다는 거였다. 바로 ‘쉬우옌!’ 그곳이었다. 중국 전체의 신자 비율이 (체감상) 인구 500명 중 1명이니, 한국으로 치면 3000명쯤 되는 셈이다. 나는 급기야 요녕성 주교님께 휴대폰 문자를 보냈다. 주교님, 이런 게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래도 최양업 신부님의 영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요!

사실 “불원 대세는 김대건 신부님보다 최양업 신부님”이라는 윗글 같은 논조로 몇 년 전 청주시 모 본당에서 강론한 적이 있다. 초빙 신부로서 열변을 토했는데도 어째 반응이 조∼오∼용해서, 이거 봉투만 받아가는 거 아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공지사항 시간 그 본당신부의 일언으로 청중은 박장대소하고 나 하나만 홍당무가 되었다. 아뿔싸! 신축한 지 얼마 안 되는 본당의 주보가 성 김대건이었던 거다.

하여간에 내년(2021년)은 죽고 못 사는 절친, 김대건-최양업의 탄생 200주년이다. 어쨌든지, 현재 박해시대는 아니라 감옥, 고문 같은 신앙의 직접적 방해꾼은 없다. 그러나 보이지만 않지, 일상을 파고드는 방해세력은 전방위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아무튼지, 차쿠가 곧 백가점이므로 김대건 최양업의 공통 사적지이다. 그렇지만도 굳이 한쪽만 택하라면 “가경자 최양업”을 통해 전구를 하기로 했다.

여태 극성 중인 코로나! 여하튼지 저치의 퇴치를 위해서도 한국 교회의 어머니 역할을 하신 최신부님을 통하기로 한다. 아직 어머니의 달 5월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순교 모범이신 가경자 최양업, 코로나 종식으로 어서 제자리로 돌아가게 빌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