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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삼일절 / 이태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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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쿠지기 댓글 0건 조회 377회 작성일 20-03-17 18:2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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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건 오빠가 좋아요? 양업 오빠가 좋아요?”

한국 수녀님들이 단체로 방문하면 차쿠신부의 강론 말투부터 달라진다. 제대 양쪽으로 백가점의 김대건 신부님과 차쿠의 최양업 신부님의 사진이 대문짝만한데 코앞에서 물어대니 수녀님들도 대략난감할 수 밖에. 흡사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는 식의 망설임과 주저는 그러나, 최근 들어 바로 깨어지곤 한다.

양업이 오빠요!”


요새는 한 번 잘해주고 떠나는 이보다 오래도록 다정히 함께 해주는 스타일이 대세라는 부언이다. 김대건 신부님의 사목생활은 6개월도 채 안 된다. 해로를 개척하다 체포되어 순교하셨다. 이에 비해 최양업 신부님은 12년 동안 동고동락하셨다. 한강 이남 전 지역을 도맡는 바람에 한 달에 (팔다리 뻗고) 잠을 잔 게 나흘밖에 안 될 정도다. 그 바쁜 중에도 단 한 명의 고해자를 위해 장시간 기회를 엿보다가 007작전처럼 성사를 주기도 했다.

 

삼일절, 만방에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민족의 날이다. 31일은 최양업의 탄생일이기도 하다. 같은 해 821일 태어나신 김대건 신부님보다 엄연히 앞선다. 중요한 건 소위 신학생 오르도(순번)일 텐데, 이 또한 26일의 선서로 김대건 신학생의 711일보다 앞선다. 부제 최양업 역시 부제 김대건에게 뒤질 게 없었다. 건강이 그렇고, 학교 성적도 더 우수하였다. 키가 좀 작은 걸 빼놓고는 객관적인 사료로 보아, 마땅히 최양업이 한국의 첫 번째 사제로 자리매김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김대건 신부님이 왜 4년이나 먼저 사제품을 받았을까? 물론 이런 임의로운 얘기들이야 지면을 통하기보다 차쿠 같은 데서 육성으로 듣는 게 훨씬 흥미로우리라!

 

작금이 박해시기는 아니라서 그런 걸까? 중국인들마저 치명자 김대건보다 증거자 최양업에 더 감동한다. 재작년 815, 120킬로 떨어진 쉬우옌’(천연옥산지)에서 70여 명이 차쿠를 방문했었다. 안산鞍山본당에서 1년에 고작 1(부활 아니면 성탄)만 미사를 해주므로 성모승천일랑은 성지에서 보내고 싶었단다.

대련에서 중국인 보좌신부가 급파되어 미사를 집전했고, 나는 두어 시간 사적지 안내를 맡았다. 성 김대건에 대해 설명할 땐 맨숭맨숭 멀뚱멀뚱하였다. 그러나 가경자 최양업에 대해 떠듬거리는 중국말을 이어갈 때는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그토록 강건했던 40살의 생명이 길에서 살다가 길에서 마쳐졌다고 할 적에 남자 노인들도 눈시울을 적셨다. 그 고된 육신이 소진되어 흙먼지처럼 길바닥에 내려앉았다고 할 때는 엉엉 울기까지 했다.

그렇게 12일을 지내다 갔고, 그러고는... 작년 사순절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2019년 봄, 성주간을 지내겠노라고 차쿠에 온 대련 보좌신부가 이틀간 다녀올 데가 있다는 거였다. 그저 통상적인 인근 공소의 방문인 줄로만 알았다. 이튿날 돌아온 젊은 신부의 얼굴이 상기되었는데, 세상에나! 한 번에 60명이나 세례를 주고 왔다는 거였다. 바로 쉬우옌!’ 그곳이었다. 중국 전체의 신자 비율이 (체감상) 500명 중 1명이니, 한국으로 친다면 3000명이나 영세를 시킨 셈이다. 나는 급기야 요녕성 주교님께 휴대폰 문자를 보냈다. 주교님, 이런 게 바로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래도 최양업 신부님의 영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요!


실은 요즘은 김대건 신부님보다 최양업 신부님이 대세라는 윗글 내용의 전체를 얼마 전 청주시내 모 본당에서 강론한 적이 있었다. 초빙 신부로서 열변을 토했는데도 어째 반응이 조용해서, 공연히 봉투만 받아가는 거 아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공지사항 시간에 본당신부의 일언으로 청중은 박장대소하고 나 하나만 홍당무가 되었다. 아뿔싸! 신축한 지 얼마 안 되는 이 본당의 주보가 성 김대건이었던 거다.

 

하여간에 내년(2021)은 죽고 못 사는 두 절친, 김대건 최양업의 탄생 200주년이다. 어쨌든지, 현대는 박해시대가 아니라 감옥과 고문 같은 직접적 신앙의 방해꾼은 없다. 그러나 보이지만 않지, 일상을 파고드는 반 신앙적 세력은 전방위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아무튼지, 차쿠가 곧 백가점이므로 김대건 최양업의 공통 사적지이기도 하다. 그렇지만도 굳이 한쪽만 택하라면 가경자 최양업을 통해 전구를 하기로 했다.

 

여하튼지, 지금 당장은 저 극성을 부리는 바이러스! 코로나 같은 육신의 바이러스는 물론 마음을 병들게 하는 영적 바이러스까지 종식되기를 기도해 본다. “일상생활의 순교 모범이신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코로나19의 퇴치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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