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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설 / 이태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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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쿠지기 댓글 0건 조회 372회 작성일 20-03-17 18:16

본문

 

집 집마다 굴뚝마다 맑은 연기 올랐다.

아니 쓰던 건넛방도 왁자그르르 사람 소리

종손 집 울 안을 돌던 지름질 내음새는

밤새 쌓여가는 백설 속에나 묻히고

대청에 따숩게 피어난 여인네들 얘기꽃.

 

내 기억 속의 설날은 어째 추석보다도 따뜻하다. 아랫목 방구들도 그랬고 그 많은 친척과 먹던 떡국도 뜨끈했다. 중국 설날을 춘절(春節)이라고 부르는 것도 글쎄, 이런 체감온도적 희원이 아닐까? 날도 엔간히 추워야지, 오죽하면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뜻을 넘어, 아녀! 오늘부터 봄이라고 부르자, 고 아예 선언해 버린 명명일꼬!

 

춘절의 기간이 참 길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까지 세상이 정지한 듯 싶었다. 식당도 슈퍼도 문을 닫고 시내버스까지도 영업정지 하는 듯하던 그 밤에 눈이라도 푹 쌓이면, 그야말로 동북의 춘절 아침은 아스라한 설화 속 같았다. 사람들은 뭐 하느라 코빼기도 안 비쳤을까? 후일 우연히 알게 되었지만 이 기간에 형제의 집을 돌며 하루씩 숙박하는 거였다. 자기 형제 차례가 끝나면 배우자 측도 방문하니 보름이란 기간이 길지 않은 것이다. 돈 좀 벌었다고 넓은 집에 산다면 발을 뻗을 수 있는 거고, 아직 살림살이 성근 자매라면 새우잠이라도, 에누리 없는 종교의식처럼 또는 피로 맺은 의리처럼, 열외 없이 해내야 하는 연중행사였다. 당시 중국인에게 왜 돈을 법니까?”하고 물으면 대다수가 춘절에 가족들한테 펑펑 써 보려고...” 라고 할 정도로 맹목적이다.

 

보름간의 이 대장정이 춘절 전야의 폭죽으로 개시되고 대보름에 또 한차례 있을 폭죽 난리로서 마무리된다. 귀신을 쫓고 액을 몰아낸다는 방포에는 조금도 돈을 아끼지 않는 것 같다. 단 몇 분 만에 한 달 치 월급이 싹 날아가도 개의치 않는다. 올해 앞집의 왕가네가 더 멋져 보였으면 장씨는 일 년을 벼른다. 이듬해엔 보란 듯 더 화려한 불꽃을 쏘아 놀리며 합장이라도 할 태세가 되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금방 기도라도 할 것 같아서는 아, 이네들 폭죽은 우리네 합동위령미사봉헌쯤 되는구나 싶었다. 게다가 차쿠는, 아니 장하시 북부 일대는 중국에서도 볼 수 없는 솟대(지붕보다 훨씬 높은)의 새 깃발들이 집집이 춘절 정취를 더해준다.

 

인근 단동시에서는 폭죽 사고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었다. 인구 밀집지인 도심에서야 얼마나 위험한가? 춘절만 되면 소방대원이 증원되고 모든 소방차가 출동한다. 한 켠에서 문명시대에 방포는 이제 그만!’하며 캠페인을 벌이지만 소용이 없다. 죽어라고 쏘아 올린다. 정녕, 공짜로, 그 화려한 불꽃을 보고 싶다면 춘절에 중국행이 그 답이리라! 어디를 가도 무방하다. 어김없이 팡!!!! 해줄 것이다.

 

농촌 지역인 차쿠는 더 요란하다. 가령 도시로 나가 성공한 종질이 있으면, 촌에 사는 당숙에게 송금하자마자 대리 방포가 행해지는 식이다. 이러한 시기에 벗으로 지내던 신부 수녀들까지 모두 귀향하고(춘절에 중국 신부 수녀들은 무조건 출신지로 간다. 공석이 된 현직에도 출신들이 돌아올 것이니 문제는 없다.) 혼자가 돼서 세상에 다시 없는 불꽃 향연을 구경하다 보면 기분이 묘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도 얼마 전부터 억지 선언해 버리기로 했다. 저 찬란한 축포는 바로 나를 위해 터트리는 거라고, 하느님 땡큐! 주민들 땡큐!라고.

 

4년 전, 차쿠로 이사를 와 맞은 첫 춘절 아침이었다. 성당 감실에 세배를 드리겠다고 두 가정이 왔는데 두바오로씨와 백바오로씨 내외였다. 잠시 후 한국 신부도 보겠다고 들어서는데 내 가슴이 다 뛰었었다. 왜냐면 두바오로는 1842년 태장하에서 김대건 최양업 신학생을 구출해 백가점白家店에 유숙시킨 두요셉 회장의 유일 후손이요, 백바오로씨는 그 백가점의 사람이었다. 나는 마치 170여 년 전으로 돌아가 새 사제 최양업이라도 된 양 당지當地의 신자들과 덕담을 나누었다.

 

그래도 그렇지, 역사는 역사이고 올해 뭐 재미난 일이 없을까? 하던 차였다. 공안 파출소장이 놀러 온 거다. 몇 마디 나누다가 단박에 마음이 맞았는데 마침 춘절 당직이니 한국 라면 끓여 먹자는 거였다. 서슬 퍼런 곳에 가서 라면 후르륵 거릴 걸 생각하면 대중가요 담배가게 아가씨가 절로 나온다. “나는 지금 라면 사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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