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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경자년 서시序詩 / 이태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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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쿠지기 댓글 0건 조회 417회 작성일 20-01-12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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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 서시序詩 / 이태종 신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사람의 작심이란 것을 이렇게까지 표현할 수 있는 윤동주 시인이 좋았다. 열여덟, 감상에 빠졌던 시절, 앞으로 딱 10년만 더 살자고 했을 때도 있었다. “별 헤는 밤”을 지새고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렸을 그 봄이 오던 아침, 나도 윤동주처럼 스물여덟 살까지이면 또 어떠랴? 했었던 거다. 윤동주 시인은 맑은 양심과 고운 민족애로 힘든 인생 쪽을 택하려고 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쉽게 써지는 것을 부끄러워했고, 미워했고, 가여워했다. 1945년 2월, 일제의 암흑이 칠흑 같을 때, 하나의 깨끗한 제물이 되어 민족이라는 제단에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조용히 흘렸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신에게도 마침내 십자가가 허락되었음을 직감하던 그 최후에야, “최초로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화해의 악수를 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나라를 빼앗기고도 살아있다는 자체와 화해하기 싫어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


10여 년 전까지, 역사의 위인 중 (예수님은 빼놓고) 첫째의 인물은 세종대왕도 이순신 장군도 아니었다. 윤동주 시인이었다. 물론 요 몇 년 사이 최양업 신부님에 대해 알아가면서 신부께 첫 자리를 내어주긴 했지만, 윤동주 시인은 여전히 내 인생에 활화산 같은 존재이다. 현재 중국 차쿠까지 가져간 시인의 시집이 출판사 별로 대 여섯 권 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본당신부 할 때 신자들에게 선물할 기회가 있으면 으레 윤동주 시집만을 찾았던 것 역시, 단적인 예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살고있는 최양업 신부의 첫 사목지 차쿠만 아니었다면, 중국의 거주지도 아마 윤동주가 태어났던 연변(북간도 용정 명동마을) 어디쯤으로 정했을 거다.


仰天不愧!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기를!

그런데, 수박 겉핥기식이나마 중국 시時를 공부할 때였다! 지금도 중국에 회자가 되는 이 표현을 쓴 사람이 윤동주 이전에 이미 있었던 것이었다! 바로 맹자이다. 맹자의 명언 중에 仰不愧於天이란 문장은 윤동주의 서시를 번역한 仰望天無愧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윤시인이 표절이라도 했단 말인가? 정말 맹자의 표현을 베꼈단 말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설사 그랬다고 하더라도 나는 조금도 상관이 없다는 거다. 그 첫째 이유는 “한 점”도 없기를 바라는 이 첨언이야말로 더욱 고양된 정신적 순결에의 추구이다. 둘째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 이 역시, 틀림없는 부연의 개진이다. 마지막으로 위 두 가지가 다 변명에 못 미친다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을 점이 있는 것이다. 윤동주는 자기가 낸 언어보다 먼저 아파했고, 더 많이 아파했다. 언어보다 치열한 실천을 했다. 나만 이리 생각하는 게 아니라 문학평론가들도 그 순백의 희생 제단 앞에서는 일체의 비평을 잃고 마는 것이다. 

           

“친구야, 너 전설과 엽기의 차이를 아냐?”

30여 년 전 신학교 교정에서 함부로, 나는 엉뚱한 질문을 동창에게 던졌었다. 생뚱맞은 얼굴이 되어버린 그에게 곧장 자답까지 이어갔을 거다. 

“끝까지 하는 거지. 자기 관리 일관되게 잘하면 전설이 되는 거고, 못하면 엽기가 되는 거고.”  

지금 생각해 볼 때 밑도 끝도 없던 시절의 이 대화에 분명히 문제는 있다. 얼른 “나름대로 주어진 바를”이란 완곡형 목적어를 앞 붙이고 싶다. 그러더라도 당시의 키워드 “끝까지”와 “자기 관리” 이 두 가지만은 아직 내면에 생생한 의미로 남아있다. 


경자년 새해가 밝았다.

전설의 새 共命之鳥, 올해의 사자성어로 교수들이 뽑은 신년 화두라고 한다. 머리가 두 개라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는 이 새의 뜻을 떠나서, 나는 듣자마자 괴조怪鳥가 만들어 낼 전설의 화음부터 듣고 싶어진다. 그리고 나 역시, 화두를 운운하는 이 상서로운 철에 윤동주의 서시로 한 해를 열기로 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십중팔구, 요 새해 벽두에만 가당하다가 삼 일이 지나면 바로 부당해질지도 모르지만, 일단 개시 문구로 삼고 싶다. 나 같은 사람이 언감생심, 연말까지는 바라지도 못하지만 되도록 “끝까지” “일관되게” 이 작심이 이어지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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