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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닭관찰기 6 / 이태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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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쿠지기 댓글 0건 조회 392회 작성일 20-01-12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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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관찰기 6 / 이태종 신부


초여름의 일이었다. 이 겨울이 되도록 미제로 남은 닭장 사건이 발생한 것은. 당시 나는 식전부터 긴 장맛비로 웃자라버린 잡초들을 베고 있었다. 퇴비장이 너른 닭장 안의 한 귀퉁이였기 때문에 거기로 던져놓는 작업이었다. 평소에 하도 대장입네 우쭐거리는 붉은 수탉을 의식해 혹시 풀더미를 함부로 내려놓은 건 아닐까? 루시아 회장이 축 늘어진 암탉을 들고 왔을 때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경험상 즉시 죽은 닭의 훼손 부분부터 찾았다. 족제비라면 닭의 모가지를 공략한다. 그러나 암탉은 알 낳는 부근이 헐어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때 수탉의 날카로운 부리가 눈에 들어왔던 거다. 나는 불끈 솟아오르는 의구심을 눌러대며 속으로 뇌까렸다. 아니겠지. 암만 지 말을 안 듣는다고 죽이기까지 할라고...... 마음은 쓰렸지만 당장 제초작업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어른 키만큼이나 자란 아욱 대를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션푸, 또 한 마리가 죽었네요,” 

루시아 회장의 말꼬리도 축 늘어져 버렸다. 이번에도 똑같이 꽁지 부분이 함몰되어있는 우리 암탉!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족제비가 아니라면 암탉끼리라도 싸웠단 말인가? 그도 아니라면 역시 저 대장 녀석이! 그때 나는 붉은 대장의 발톱에 묻은 핏자국을 보았던 것 같다. 그렇다! 오십 보를 양보해서 네가 직접 가해하지 않았어도 이건 직무유기이다. 대장으로서 싸움을 말려야 하질 않은가? 백보를 양보해서 다른 천적이 침입했더라도 죽기를 무릅쓰고 지켰어야 했다. 그러려고 여태껏 사람들한테까지 대들던 그 배짱이 아니더냐? 어쨌든, 이 아침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돌려놓을 수는 없었다. 나는 거칠게 대장을 몰아 잡았고, 닭장에서 들고 나왔다. 

“회장님, 당분간 이 수탉...... 보기 싫네요!”

그러자 그녀는 짐작이라도 했었다는 듯

“마침 저희 집 닭장이 비었는데 얼마 동안 거기에 놔두던지요.”

속상한 마음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딱 거기까지면 얼마나 좋았을까? 돌아서려던 회장이 쓱 한 마디를 보탠 거다.

“마침, 오늘이 장날이니 그냥...... 장에나 가져가 가 볼까요?”

이미 한번 끄덕여진 고개는 거스르지도 못하고 내리 끄덕여졌다.        


“션푸, 하 이걸 봐요!”

10분도 안 되어 번개처럼 돌아온 회장의 손에 300위안이 흔들리고 있었는데 내 마음은 그보다 더 흔들거렸다.

“이상해요! 천주님의 뜻인가, 여기 특산 대골계를 사려고 판진(盤錦반금 210㎞ 거리)에서 일부러 왔다는 거예요. 그 총각이 묻지도 않고 300위안(5∼6만원)을 줬어요. 보통은 150인데.”

맙소사! 총각이 어디쯤 가냐며 뒤를 쫓아가 물리고 싶은 마음은 그러나, 조금 전 지켜본 두 마리의 죽음 앞에 묻혀버리고 있었다.      

“우리 수탉 판진 가 호강할 거요. 곱절로 사 갔으니, 두고 보거나 투계를 하겠지요.”


그 후 보름이 지난 더욱 이른 아침이었다. 잠이 덜 깨어 게슴츠레 뜨락을 내려보다 번쩍 눈에 불이 댕겨졌다. 닭장 전체가 요동치고 있었는데 쇠스랑을 쥔 여회장이 닭무리 앞에 서서 소리를 치는 게 아닌가? 안 그래도 닭들에게 미안한 터라 한걸음에 내달았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새하얀 족제비, 한여름 그 아침부터 얼마 전 첫눈이 뿌릴 때까지 나는 줄곧 그런 줄로만 알았다. 족제비라면 수탉에게 내린 판결에 거리낄 게 없다. 어차피 암탉의 훼손 부위와는 무관하니까. 그러나 그의 사촌 담비라면 다르다. 물론 족제비보다 묵직하고 사납지만 닭의 꽁지를 공격하는 습성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흰 것이 담비였다는 결론으로 점점 기우는 거다. 이게 만약 보름 전부터 출입했다면, 그렇다면 닭장 사건은 단박 미제로 남게 된다. 거기다가 정말 담비의 소행이라면 판진으로 팔려 간 우리 집 수탉은 억울해진다. 아니 대장이야 여기보다 잘 먹고 잘 살겠지만, 그 멋진 수탉을 잃어버린 우리 집 닭장은 어쩌란 말인가?      


허어, 아직도 미궁이다. 붉은 수탉의 짓인지, 암탁지간의 쟁투인지, 담비의 소행인지 알 길이 없다. 나로서도 몇 달째 시들해진 닭장을 스쳐볼 뿐, 주황 수탉에게 묻지도 못하고 차가운 하늘만 올려보게 된다. 그래, 대장 수탉아. 너도 잘못이다. 잘나도 너무 잘난 잘못이다. 그러게 좀 평소 덜 잘나지 그랬냐? 아니다! 내가 더 잘못이다. 관찰만 하려다가 니들 역사에 개입하고 말았구나. 닭은 그저 닭일 뿐이라고 넘겼어야 했는데. 너나 나나 진즉에 알았어야 했다. 닭장의 진짜 주인은 아님을..... 그런 탓에 나도 만날, 그 되갚음을 톡톡히 받고 있는 거 아니냐? 도리어 암탉들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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