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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의 유령2 / 이태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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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쿠지기 댓글 0건 조회 430회 작성일 20-01-12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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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쿠의 유령2


     “이 안에 계화(桂花 : 계수나무)가 있나 봐요? 이건 계화 향 같은데?” 

코에서부터 번지는 미소 밑으로는 아직 퉁명스러운 말투가 남아있을 것이다. 오고 싶어 온 화훼단지가 아니었다. 나는 쫓겨 나왔고 도망쳐 나왔다.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마지못해 닿은 발길이었다.


     최근 대륙의 오성기에 대한 사랑이 열렬하다. 홍콩의 홍기 훼손 사건 때문이리라. 차쿠에도 국기 봉을 세워놓고 기를 달았더니 그것을 감찰하는 관리들이 대거 방문한다는 급보였다. 용화산진, 장하시 뿐만이 아니라 대련시 정부까지 10여 명이 온다고 했다. 문제는 대련 팀 중에 생면부지인 새 관리가 있을 수 있다는 걱정이었다. 나 역시 구면이 된 이들에게 일말의 피해도 주기 싫었다.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이란 유령처럼 줄행랑을 치는 거였다. 그런데 갑자기 도망을 나와서는 서너 시간 가 있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할 수 없이 찾아온 화훼단지였다. 


     “션푸(신부), 숨으러 가지요?” 

이것은 순전히 자괴일 거다. 오랜만의 계화 향기 앞에서도 아까 루시아 회장이 던진 말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찔러 온다. 또 마음이 아프다. 정부의 방문이란 대사大事 앞에서 내빼고 있는 신부가 초라해 보인 게 아닐 거다. 스스로 이런 자괴에 사로잡혀 현관을 빠져나갈 때는 그 꽁지가 보였을 거란 거다. 그래서 수녀님들까지 갑자기 육식 동물이 다된 태도로 내 꽁지의 끝을 구경했을 것이다. 다 내 자격지심 탓이다.


     홧김에 돈지랄이란 것도 해 본다. 계화 화분 1개에다 온상 안에 심고 싶은 귤나무를 샀고, 국화를 보는 순간 성모상에 앞에 놓고 싶어졌다. 후딱 290위안(5만 원 상당)을 써버렸다. 그래도 쉬이 분이 풀리지를 않는다. 내가 그동안 차쿠에 해 놓은 게 얼마인데 도망을 다녀야 하나? ‘처량’이라는 형용사는 ‘못난’이라는 데까지 쫓아오며 약을 올린다. 이렇게 중국살이에 서운해질 때 외는 주문이 있다. 나는 빚쟁이다. 170년 전 김대건 최양업 신부님이 진 빚을 갚을 뿐이라는 반복을 한다. 그래도 여회장의  별 뜻 없는 한마디가 조소로 둔갑하여 성질을 들쑤셔 온다. 션푸, 도망치러 가지요?


     과거에 화가 폭발하면 옆의 것을 부수기도 했다. 그럴 때 걸리적거리면 나 자신까지 부수었다. 지금 그치가 살살 등줄기에서 갈기처럼 일어나 머리까지 씌어가려는 찰나였다. 이래서야 차 운전까지 지장을 받는다. 나는 결국 비장의 방패를 꺼내 들고야 만다. 이윽고 일명, 최양업의 <자비 방정식>이 리마인드 된다. 최신부님은 하느님의 자비성만을 믿은 분이다. 그러나 그의 현실은 무자비했다. 그러면 ‘하느님관’과 ‘현실’의 갭을 어떻게 극복하셨을까? 이 대목이 바로 자비 방정식이 대입되는 지점이다.


     역시! 약발이 금세 섰다. 적어도 나한테만은 양업 표 <자비 방정식>이 직방이다. 태평령을 지날 때 마음을 다잡았고 멀리 용화산이 보일 때는 멋진 말씀까지 생각날 줄이야. 일찍이 태국 샴에서 초대 조선 교구장 소주교님이 하신 말씀이다. 나는 여기서 영원히 살 것처럼 머무르고, 내일 곧 떠날 것처럼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네, 네. 저도 그러려고요. 내일 차쿠에서 추방되더라도 한 그루의 나무를 심으려고요.


     “이 계화향을 천리향이라고도 하오!” 

이튿날 아침, 나는 대련 보좌신부한테 계화나무에 대해 아는 체를 했다. 요 며칠 차쿠의 미사를 해주러 와 있는 그였다. 함께 귤나무를 심은 후, 거실에 옮겨 놓은 계화의 향이 커피 향과 어울려 마치 현악 2중주처럼 피어오르는 모닝커피 시간이었다.

    “근데요, 어제 대련 관리들이요, 신부님 안부를 물었어요!”

뭐라고? 공적인 자리에서 유령의 존재를 거론했다고? 그렇다면 아주 고무적이다. 

     “에이, 당党 앞엔 보이지도 나타나지도 못하는 유령의 신세인데 뭐.”

그러자 앳된 신부는 준비라도 한 듯 바로 말을 받는다. 

     “아니예요. 언젠가 주교님도 저희들한테 그랬어요. 한국 이신부는 천주께서 요녕교구에 주신 선물이라고. 제 생각에 신부님은 유령이 아니라 차쿠의 천사예요.”

햐아, 계화향에 섞어 마시는 커피향이 와 이리 좋노! 점잖지 못하게! 젊은 신부의 립서비스일 뿐이려니, 하며 막 번지려는 미소를 참아야 했다. 얼른 말부터 돌리고 본다.

     “근데 신부님,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를 중국말로 뭐라 하는감?” 


    그러고는 점심 무렵이었다. 관리들이 감찰하고 간 게시판을 나도 한번 보려다가, 我的天啊!(오마이갓!) 중국말을 하고 말았다. 성당 관리자란에서 처음으로 루시아 회장의 세속명을 보았던 것이다. 계향(桂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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