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가을 서정 2 / 이태종 요한 신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차쿠지기 댓글 0건 조회 403회 작성일 19-11-04 23:22

본문

가을 서정 2


     ♬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매일 똑같은 밤이거늘 유행가 하나 때문에 치기 어려진 마음은 공연히 맥주 한 잔을 생각한다. 또 혼자 청승 떨기에는 병이건 캔이건 너무 썰렁한 10월 31일의 밤, 맥주 대신 따끈한 차 한잔을 들고 왔다 갔다 하다가 하늘을 올려본다. 어두운 지붕들 위로 별빛이 무수하다.  


     계절이 깊어만 간다.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도 지났다. 나는 그제, 어제, 오늘까지 월동 준비를 끝냈다. 작년에 팠던 구덩이에서 1미터를 더 파 김장독을 묻었고, 온상의 비닐도 얼추 씌웠다. 이제 된서리가 내리든, 눈이 오든, 천지가 꽁꽁 얼든 상관 없다. 이렇게 기온이 곤두박질치는 늦가을...... 그러나 이 차쿠에는 또 다른 월동의 채비들이 있었다는 사실(史實)이 문득 발치에 밟히어 온다. 


      백 수십 년 전, 조선으로 파견된 선교사들 이야기다. 이네들은 차쿠의 <선교사 대기소>에 살면서 겨울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여름에 압록강을 건너다가는 체포될 것이 백발백중이니 강이 얼기만을 기다렸다. 눈보라가 치는 밤, 야음을 틈타 흰 광목을 뒤집어쓰고 얼음을 기어 도강하면 그중 안전했다는 선교사들의 편지글이다. 물론 봄에 도착하신 최양업 신부님도 동지冬至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최신부님의 경우는 다르다. 박해의 모진 시간이 덮친다고 해도, 그래도 그리운 겨레와 동포들의 품이었다. 그러나 파리 외방 선교회 신부들 이야기다. 도대체 이들에게 조선이라는 게 무엇이었던가? 대관절 뭐였길래? 리샤르, 마르티노, 블랑, 칼레, 리델 등 주교 신부들이여, 그대들에게 듣도 보도 못했던 조선이 도대체 무엇이었단 말입니까? 


      계절은 어쩌라고 깊어만 가는가? 그래, 그랬을 것이다. 여기 차쿠에서 의주 앞 압록강 도강지역까지는 무인지대요, 여기서 출발하면 일사천리로 조선의 땅이었다. 즉시 현장에로의 투입이다. 아무리 순교성인이지만 이렇게 첫서리가 오고 기온이 내려가면 성심이라도 갈렸을 것이다. 두 마음이었을 거다. 아, 이제야 조선에 가는구나! 그리고 나 같으면 틀림없이 이랬을 거다. 아, 이제는 꼼짝없이 죽는구나! 


      잘 아는 신부님이 파리 외방 선교회를 방문하고 와서 들려준 얘기이다. 파리 외방 본부 내 건물의 어느 홀에는 커다란 유화 한 장이 걸려있단다. 그림의 내용은 이렇다. 휘영청 달밤에 어느 젊은 신부가 노파 한 분을 쓰러뜨리고 그 위를 타고 넘어가는 장면이다. 그림의 해석은 이렇다. 조선으로 파견되는 선교회 신부가 마지막으로 모친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다. 어머니는 조선이 사지死地요, 무시무시한 추적이 기다리는 최고 위험 지역임을 어떡하다 알아버린 것이다. 아들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종일 씨름하다가 날이 저물고 달이 솟았으리라. 그러나 더 지체하다간 배를 놓칠 것 같아서는 어머니를 넘어뜨리고 길을 재촉하는 외방 사제였다.


     그렇게 출발해서 일단 도착한 곳이 여기 차쿠이다. 그리고 여긴 아직 사람 살 만한 곳이고, 이렇게 저렇게 생각이란 걸 해 볼 여지의 땅이었다. 그러면 나는 계속 조선으로 향할 것인가? 어차피 사제가 많이 부족하다는 인도나 동남아로 가도 무방하질 않은가? 돌아갈까? 계속 조선으로 나아 갈까? 그럴 때 그네들은 하늘을 향해 물었을 것이다. 아니 자기 자신을 향해 물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조선을 선교지로 택하였는가? 거기서 해결이 나지 않으면 점점 이전으로 돌아가 물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왜 외방 선교 신학생을 지망했는가? 거기서도 답을 못 얻었다면 아예 첫 마음으로 가서 물었을 것이다. 그러면 당초에 왜 나는 사제가 되려고 했던가? 그때 분명히 같이했었을 고민들...... 그렇다면 인생이란 건 무엇인가? 이 현세에서 잠시 살다가는 인생의 시간이라는 건 도대체 무엇인가? 아마 성소를 고민하던 첫 마음에다 물었을 것이다. 이 첫 마음을 꺼내어 들여다보았던 곳이 여기 차쿠이다. 왜냐면 이제 겨울이고 조선이니, 겁이 났을 테니까. 겁이 날 때마다 이 첫 마음으로 쓸어내리고 올려다본 하늘이 차쿠의 하늘이다. 왜냐면 저 하늘은 고향의 것과 여기의 것과 앞으로의 조선 하늘까지 이어질 테니까.


시월의 마지막 밤, 계절 따라 생각 역시 깊어진다. 낭만에 차 마시는 소리 하나 하려다가 문득 나도 그 하늘을 올려보고 말았다. 거기에는 겨울 길을 채비하시려는 대선배님들이 반짝반짝한 빛들을 하고 계셨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