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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가을 서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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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쿠지기 댓글 1건 조회 725회 작성일 19-09-1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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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서정 1


     올려다보고 말 것도 없이 창밖이 바로 창공이 되었다. 하늘이 올라간 것이다. 더위도 나가고 먼지도 나가고 습기도 나가고 땀 냄새도 나가고 아우성도 빠져나간 계절은 이제 저만큼 비워져서는 가없이 고양되는 중이다.

     용화산蓉花山 자락을 흘러내리는 도랑물에도 변화가 왔다. 줄줄줄 나던 물소리가 졸졸졸 하며 맑아진 것이다. 아니, 맑아졌다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고음으로 올라간 걸 가지고 내가 끌어다 붙인 (높은 걸 보니 이미 맑은 거라는) 귀납적 주장이다. 

     가을날, 대자연도 이렇게 맑아져서야 저렇게 드높여지기 마련이라! 그렇다면 나도, 내 정신도 고양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비워내고 빼내야 한다는 건가?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가을앓이를 하고 나서야 채워질 그 모국어로 기도하게 해달랐던 故 김현승 시인이 있다. 먼저 가신 나라에서 시인은 여전히 그처럼 기도할까?


     고독.

     자기를 비워내어, 이런저런 것들로부터 홀가분해졌을 때 꼭 찾아오는 손님이다.

     외로움.

     실은 나도 중국에 오고 난 후부터 사시사철 옆에 두고 사는 벗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 외로움이란 텅 빈 것을 유용하게 써먹었던 적도 있다. 마치 소중한 사물을 담아내는 빈 그릇처럼. 심양에서 3, 4년 동안 정말 그토록 외롭지 않았던들 겁 없이 시작했던 소설 쓰기를 끝내기 어려웠을 터, 그때는 외로움이 차라리 자양분이었다. 그리고 여기 차쿠에 교육관을 짓고 혼자 와 살 때는 더욱 그렇다. 외로움이 가져다준 소득이 적지를 않다. 가령, 현재 차쿠에서의 거주 문제에 가장 도움이 되는 사람이 공안 파출소장인데, 소장이 나를 도와주고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재작년 가을, 이 큰 집을 혼자 지키고 있는 나를 순찰하고부터였다. 어떻게 남성이 외국에 그것도 오지에 혼자 살면서, 이리 정상적으로 생활하는가? 하며 당시 그는 ‘탄복’이라는 말까지 했다. 앞으로 따꺼(大哥:형)라 부르겠다고도 했다. 또한 지금 함께 사는 수녀님들 역시, 여기 요녕교구 성직자들이 보기에 내가 워낙 쌍이 없는(?) 불쌍(不双)한 사람으로만 보여, 외국인한테는 처음으로 파견해준 것이다. 아, 거의 14년을 거슬러 올라가! 이 차쿠를 발견한 자체 역시 외로움 때문이 아니었던가? 2005년에서 2006년으로 가는 황금의 연말연시에, 어차피 방구석에 혼자나 길바닥에 혼자나 피장파장이라며 나선 답사길이었다. 그 우연히 차쿠를 얻어 만나게 된 길이...... 


     하늘빛 개울 물소리가 벌써 가을의 색이요 소리가 되었다. 이런 날에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도 굳이 책으로 바치고 싶은 것이다. 휴대폰 성무일도를 덮는 대신 보송보송 까슬까슬해진 책장을 사각사각 넘기다가, 또 창밖으로 눈을 빼앗긴다. 저 저, 정 淨한 하늘이 아예 내리시려는 겐가?


     가을에는 이런 멍한 시간도 사랑하게 하소서.

     그 외로움이라도 제대로 해보게 하소서.

     대낮부터 무슨 별이라도 찾아 헤일 듯한 눈매가 되어 차쿠뜨락의 성모상으로 향한다. 지금껏 그랬지만 언제나, 늘 거기쯤 계셔주시겠노라고 웃으시는 성모님 언저리에 시선 고정되었다.

댓글목록

엘리님의 댓글

엘리 작성일

땅에 인간이 하늘을 향해 두손 모읍니다.
둥근 달이 떳습니다.
깊어가는 한가위..
성모님 은총 가득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