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저장 / 이태종 요한 신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차쿠지기 댓글 2건 조회 1,145회 작성일 19-09-06 15:33

본문

저장 / 이태종 요한 신부 


“수녀님, 앞으로 금요일 조식은 식빵으로 합시다. 어때요?”

순전히 남는 음식의 처리 문제 때문이었다. 3년 전 새끼손가락 굵기의 살구 묘목을 심었더니 올해는 제법 열매를 맺었다. 그런데다가 허수녀가 또 누구한테 씨알 굵은 살구를 한 광주리나 얻어왔다. 망설일 것도 없이 곧장 삶고 고아 달이기 시작했다. 살구잼을 만들던 날은 왼 종일 온 데가 향긋하였다. 

“그래요, 션푸. 봄에 해놓은 딸기장도 있잖아요!” 

중국 사람들은 딸기잼도 살구잼도 그냥 딸기장(醬) 살구장이라고 부른다. 거기다가 새우젓이나 명란젓 역시 모두 새우장(醬) 명란장이라고 한다.  


아! 제철에는 넘쳐나서 주체를 못하고 제 아닌 철에는 또 없어서 못 먹는 식재료들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까? 모름지기 숱한 음식들이 이 저장 기술과 더불어 개발되었으리라. 봄나물을 말려두고 여름 무청을 걸어두었다가 눈발 나리는 겨울밤에 볶고 끓이면 얼마나 맛있으리. 밥도둑이라는 간장게장 토하젓은 몰라도, 내사 된장 고추장 김장 없이는 외국서도 못 살아라. 


잼도 젓갈도 그저 장醬이라고 부르는 중국은 상대적으로 장맛보다 향신료 쪽으로 발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땅덩이가 크다보니 언제든지 사철 식재가 없지를 않았다. 당나라 양귀비도 겨울의 서안西安에서 아열대의 해남도海南島 과일을 운반해 먹었다지 않은가? 이건 어디서 들은 것도 읽은 것도 아니지만, 한국과 중국의 음식 차이는 이 식재료 저장의 필요성, 바로 이점에 십분 좌우되었을 성싶다. 사시사철 철 아닌 철이 없으니 굳이 저장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신선하다고한들 특별대우를 받는 법도 없다. 일단 펄펄 끓는 기름 속에 들어가고 본다. 갓 잡아 올린 바다생선이라도 먼저 튀기고 본다. 얄짤없다. 우리네야 회 한 첨 생각부터 하게 되지만, 암만 신선해도 여지없다. 신선한 채로` 즐길 만큼 즐기다가 저장음식에 들어가는 우리와 달리, 중국은 사철 나는 물뭍 식재를 우선 튀겨놓고는, 그 위에 현란한 향신료로 조화를 부릴 뿐이다.


그래도 중국요리가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면 큰 오산이다. 무궁무진할 정도로 풍부하다. 오죽하면 중국인이 ‘하도 많아서 평생 다 해보지 못하고 죽는 3가지’ 중 하나로 ‘여행’, ‘글자(漢字)’와 나란히 이 ‘음식’을 꼽았을까? 그래서 중국 여행 중 어떤 음식점에 들어갔다면 십중팔구, 몰라서 못 시켜 먹는 요리가 부지기수일 거라고 생각해야한다. 왜냐하면 주문할 때 진땀이 날만한 것도 각 지방마다 식당마다 음식 명칭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 부득불 중국말을 좀 동원해서 원재료의 이름을 열거하고 조리 방법까지 설명해 주어야 제대로 주문이 된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식당도 식당이지만 노련한 가이드의 주문이야말로 예술의 경지가 될 때가 적지 않다. 나도 5년 전에 요양遼陽 본당의 성모상 축성식 참석 차 음식 초대를 받았었다. 원탁이 얼마나 큰지 30명이 넘는 신부들이 빙빙 돌아가는 하나의 식탁에 앉아서 50여 가지 제 각기 다른 고도故都의 음식을 접했을 때야, 비로소 중국 요리의 진수를 맛보는 듯 했다.          


‘하, 저 많은 토마토를 어떻게 하지?’

창밖에 주렁주렁 열린 빨간 것들을 보며 순간 스파케티 소스까지를 생각했다면 무리수일까?  그러다가 엉뚱하게 내 생각의 꼬투리에서는 콩알만 한 게 톡 삐져나오는 것이 있었다. ‘야...... 이거. 우리 마음이라는 것도 말이여. 이 마음이라는 것도 저장할 수는 없을까? 무슨 잼처럼 달여 놨다가 오래두고 꺼내 쓸 수는 없을까? 당최 넘쳐날 날 때는 주체를 못하고, 메마를 때는 허허로우니 말이여.’

댓글목록

배희선님의 댓글

배희선 작성일

남아도는 식품들을 저장하는 방법으로는 잼으로 만들 수 있고, 뜨락의 토마토라면  끓여서 얼렸다가 비타민이 부족되기 쉬운 겨울에 매일 토마토쥬스로 먹으면 금상첨화련만. ㅎㅎ

한 번 방문했던  차쿠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의 하나는  순례객숙소 장문에서 내다보이는 끝없이 펼쳐진 푸르른 주변의 비옥한 밭들이었다.  인상깊게 읽었던 펄벅의 소설 '대지'의 배경도 과연 이런 곳이었을까? 펄벅의 대지에서는 한 가문이나 나라가 겪는 흥망성쇠의 여정을 무척이나 잘 보여주었다.  소설의 여주인공이 사랑했던 대지 땅도 차쿠같이 비옥한 이런 곳이었을지 궁금하다. 비옥한 땅 한가운데 있던 차쿠 뜨락에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렸을 걸 생각하니 얼마나 풍성하고 탐스러율지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그 차쿠 뜨락에서 주님의 숨결을 깊이 느끼시며 채소와 야체들을 가꾸시는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모습에서 대지를  아주 많이 사랑하시는 그 마음과 기운이 전해져온다. 

마음의 저장은 가능할까요? 넘칠때는 저장해두었다가 허허로울때에는 꺼내서 채우고, 와!! 정말 기발한 발상이십니다요!

엘리님의 댓글

엘리 작성일

경험과 추억,... 이모든것들이 사랑으로 저장되어 있으니 살맛나게 살아 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랑의 저장단지 고이 간직 하셨다가 차쿠에 오시는 분들께 후하게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