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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가꾸기 / 이태종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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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쿠지기 댓글 1건 조회 557회 작성일 19-09-06 15:32

본문

가꾸기 / 이태종 요한 신부 


굿모닝 얘들아! 

어제 장시간 땀 흘리며 밭을 매주어서인가, 새벽같이 뜨락에 내려서는 나를 보며 온갖 이파리들이 손을 흔드는 듯하다. 나도 밝게 웃으며 아침인사를 나눈다. 기분이 이쯤 되면 정말 사람이 정원을 가꾸는 것이 아니라 정원이 사람을 가꾸어 주는 폭이다.


먼저 성모상 쪽으로 가서 월계화 가지를 움켜잡았다. 며칠 전 한국의 어느 골목 문방구에서 사 온 뜨개질 실로 묶어 성모상 뒤쪽으로 억지 잡아 돌린다. 계획대로라면 내년 봄부터 부챗살 같은 배경으로 펼쳐놓은 대걸레자루 나무 사이사이에 꽃송이가 얼굴을 내밀 거다. 그것도 5월 봄부터 11월 늦가을까지 연실, 병풍처럼 피어날 것이다. 

아이쿠, 내 정신 좀 봐! 그 문방구에서 우연히 나무색 털실을 찾았을 때부터 급해진 마음이란 정작 성모님께 문안 여쭙는 일도 잊게 했단 말인가? 성모님, 굿모닝입니다. 성모 승천 대축일, 축하드립니다.


나도 좀 묶어 줘요!

어라, 토마토 넝쿨이 말을 다 건네는가? 장마철 정원 가꾸기란 게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이 와중에 벌써 한 차례 수확을 본 토마토 고랑이 내 눈 안에 선착하더니 귀까지 점령해 왔는가. 잘 묶어 주면 실한 열매를 맺겠노라는 맹서 같은 게 아니었다. 일단 한 번 묶어주시라니깐요, 하는 애교 투의 몸짓엔 스르륵 발길이 그리로 향할 수밖에. 이내 토마토 줄기에 손을 대자마자 하아, 코를 톡 쏘아대는 향기! 우적우적 씹을 때 보다 몸 깊숙이 엄습하는 야생의 향.


나는 정원만 가꾸는 것이 아니다. 운전하면서 차내에서도 무언가를 가꾸고 기른다. 잘 자라라, 잘 자라. 차쿠 반경 100킬로 이내에 한국인이 산다는 소릴 들어보지 못했고, 중국 신부들이 사는 곳도 심양이나 대련이다 보니 한 번 운전대를 잡으면 왕복 600킬로는 기본이다. 물론 언제나 독행이다. 또 그렇게 혼자라고해서 굳이 찾아와 주는 불청객! 반갑지 않은 그를 쫓아내기 위해 음악도 틀고 허리도 비틀어 보고 하지만 이 졸음이란 상대 앞에선 역부족하다. 그러한 때 자동차 계기판을 들어다보는데 바로 ‘연비 수치 그라프’이다. 처음에는 기름 절약을 위해 시작된 버릇이지만 실시간으로 줄다 늘다 하는 살아있는 막대그라프를 보노라면 또 승부욕이 번쩍 난다. 급브레이크로 연비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눈은 되도록 멀리멀리, 발은 미리미리 밟고 뗀다. 그러다가 연비가 0.1이라도 성장하면 좋아, 좋아 온 몸에 소리치며 졸음을 쫓아낸다. 


살아있다는 것은 어디엔가 신경을 쓰는 일이 아닐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땀도 흠뻑 흘려 본 다음에야 더 살아 있다는 느낌이 용솟음칠 거다. 과거에 본당을 맡았을 때, 공장이나 사무실을 축복하러 가서는 ‘노동으로서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고 스스로도 성화된다.’는 문구가 얼른 이해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 차쿠에서, 신부이지만 신부의 일을 할 수가 없고, 현지인과의 만남 자체도 조심스러워지는 환경이다. 하는 수 없이 낯설지만 또한 낯익은 내 ‘생명 가꾸기 노동’에 나름대로 열을 올려보기로 한 것이다. 안녕, 옥수수 꽃 이삭부터 퍼지는 차쿠의 아침 햇살아!  

댓글목록

엘리님의 댓글

엘리 작성일

땀 흘리는  노동피정이네요~~~
쉬엄쉬엄하시며 자나 깨나 운전조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