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가고 있는 길

페이지 정보

작성자 차쿠지기 댓글 1건 조회 585회 작성일 19-08-04 11:34

본문

가고 있는 길


“참, 세상이 뜻 때로 되는 게 없네.”

아침 식탁에서 설수녀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한국말을 하고 말았다. 그녀는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갔다가 어제 오후에야 차쿠로 복귀했다. 첫 식탁이니 이스라엘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석 달 전 설수녀가 서원 25주년을 맞아 동창들 전체가 이스라엘을 간다는데 자기는 어떡했으면 좋겠냐고 말끝을 흐려올 때, 우선 경비 문제부터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션푸, 26년 전 수녀원을 나간 동기가 있는데 시집가서 돈을 벌었대요.”

보아하니, 착복식도 제대로 못 하고 쫓겨난 건지 제 발로 나간 건지 모를 동기 한 명이 오매불망 25년을 기다려 온 게 분명하였다. 비용 전체를 대면서도 이스라엘 같이 가자고 수녀들에게 통사정을 하여 온 모양이다. 차쿠에 손만 안 벌리면 되지... 하는 빛으로 고개를 크게 끄덕여 주었었다.



“그런데? 동기는 왜 못 갔대요?”

손꼽아 가며 돈을 모았을 그 동기가 가지도 못했다고 할 때 말끝이 저절로 올라갔다.

“딸이 상해 과학대학에 과대표까지 하는데, 순례 며칠 전에 글쎄 뭔 일인지 손목에 칼을...... 엄마는 지금 병원에서 울고만 있대요.”

비용을 댄 동기는 딸을 간호하느라고 비행기도 못 탔는데 뭘 저리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할까? 이상하리만큼 통통 튕겨 오르는 설수녀의 말투를 눌러주고 싶었다.

“그건 그렇고...... 수녀님은 그래, 이스라엘 중 어디가 인상 깊었어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소생한 성당이요.”

지금 말을 주고받는 한국 신부 역시 25주년인데다가 아직 이스라엘을 가지 못했음을 느꼈는지, 그녀는 자제하며 말했다. 설수녀의 순례기를 듣는 둥 마는 둥 나는 내닫는 생각의 고비를 움켜쥐었다. 그래...... 하느님두 그렇지. 꿈에도 그리던 순례를 앞두고 외동딸이 자살을 기도하게 하실 건 뭐랴 그래......  생각의 채찍질은 곧장 내몰아 갔다. 아니다! 하느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하느님이냐? 혹은 딸이냐? 를 물으신 게 아니다. 그게 아니라, 수녀들이냐? 딸이냐? 를 물어 오신 것이다. 둘 중 하나를 택하라. 아직도 수녀원인가? 아니면 딸인가? 무엇이 너의 성지聖地인가?    




당연지사로 이스라엘을 포기하고, 잘 나가던 사업장도 중단하고 오로지 딸 곁에서 커다란 아이를 보듬고 있다는 이야기일 때 솔직히 내 생각은 거기까지 미치었다.

그렇다, 그 동기는 지금 딸의 어린 시절을 보듬고 있을 것이다. 수녀의 길에 대한 미련 때문에 필시 소홀했을 어머니의 품을 다 내어주고 있는 거다.

“그럼, 그 병실이 바로 이스라엘이네.” 라고 나는 또 한국말을 할 뻔 했다.        


28962dbacdbd986b45df77a4f8f95ae2_1564888286_8085.jpg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 갈라져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두 길을 다 갈 수 없는 한 사람의 나그네라고 표현한 프로스트의 時 <가지 않은 길>이 떠올랐다. 그러다가 ‘세상이 뜻대로 안 되는 게 아니라, 나그네들이 두 길을 다 가고 싶은 건 아닐까?’ 라는 데 까지 생각은 치닫고 있었다.

댓글목록

yeon33님의 댓글

yeon33 작성일

오~~~~~~~    얼마나 마음 아팠을까.~~
주님께선 친구분을  당신의 도구로 쓰셨나보네요.  큰 선물 받은 동료들의 기도가 컸을겁니다.
25년을 기다렸다 맺은 결실이라면 두 길을 다 걸은건 아닐까요???
저도 친구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의 위로와 축복이 가득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