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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길 위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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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쿠지기 댓글 1건 조회 625회 작성일 19-06-07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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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2


사제연수가 끝나자마자 꼭두새벽으로, 40분이나 이르게 나선 차쿠행이다. 뭔 꿀단지를 숨겨놨기에 이리 서두르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다가는 그렇지, 몇 년 만에 만난 동료애에 둥둥 떠다니다 처삼촌 벌초하듯 조차 못한 기도가 아니었던가. 그렇다! 묵주 돌리기에 차쿠만한 데도 없질 않은가? 하고 자답을 한다.

그러나 이제부터 다시는 차쿠의 기도발이 세다는 둥, 거기서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는 둥 그런 소리는 하지말자고 작정하는 차쿠 행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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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승패를 내는 시합을 즐겨왔으니 기도라는 것도 공격과 수비로 나누어 볼까? 기도의 공격이란 주님한테서 구체적인 결과물을 얻어내는 적극적 부분이겠다. 성경에도 두드리라, 마음을 모아 청하라 하지 않았나. 

기도의 수비란 지향에 대한 인내 상태이리라. 최양업부제도 고군산도에서 ‘얼마나 많은 성인들이 한 가지 지향으로 20년 30년 40년 혹은 더 오랫동안 열렬한 기도와 힘든 극기, 그 지루한 보속을 바칩니까? 그런데 저는 고작 몇 년 기도해 놓고 졸라대기만 했으니......’하며 눈물지으셨다. 기도의 수비는 지향을 마주하는 내 인생의 태도요 자세이다. 기도의 성공여부조차 상관없는 듯하다. 그것은 주님의 소관이고 나는 다만 기다리며 사는 내 기다림의 자세를 내가 다시 바라볼 뿐이다.”  


길만 나서면 절로 돌아가는 묵주가 멈출 정도로 머릿속에서는 개똥신학이 급히 전개되는 중이다. 사제연수 내내 기도의 공격부분보다 수비부분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교회를 짓는 것보다 있는 교회를 채우는 쪽으로 간절해진 이유이다.


“기도한다는 자체가 벌써 은총을 받고 있는 상태에 돌입한 거다. 하느님한테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따로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가족들이 보고 싶어서 가족들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하여 기도를 드린다면 그 묵주를 돌리는 30분 동안엔 이미 덜 외로웠다. 또한 차쿠에서 작게나마 계획하고 있는 복지사업을 위해 기도한다면 나는 벌써 그 사업에 임하고 있음이다.” 꼭 들어주시지 않아도 상관없을 것 같은 질긴 수비력이 느껴질 때, 휙휙 ‘遼陽요양 8㎞’라는 교통 표지판이 스친다.   




“시합에서는 흔히 공격이 최상의 수비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서는 그럴 수 없다. 0대0으로 끝나는 정도가 아니라 0대-5로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로 수비라도 해 놓아야한다. 빈 그릇에는 아무거나 들어차기 마련이다. 마음이라는 빈 그릇을 기도로 꾹꾹 채워놓는다면 헛됨이 들어차지 않으리라. 그러면 적어도 마이너스는 아닌 거고, 최소한 수비는 되는 거라, 장차 적극적인 성취의 때도 열리리라.”는 생각에는 손과 발에 다시 힘이 들어간다. 300킬로를 달린 자동차도 장령長嶺 나들목에 들어간다. 3시간 전 심양에서는 32도라 에어컨을 켰는데, 어느새 16도로 떨어졌으니 정말 크기는 큰 나라이다. 


“내가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맬 때 오랫동안 전해오는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중략)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나는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난데없이 황동규의 시구가 머리에서 가슴을 내달렸고 그 여운이 끝날 즈음, 멀지 않은데서 차쿠 성당의 종탑이 까치발을 뜨고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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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엘리님의 댓글

엘리 작성일

두드리라 열릴것이다. 구하라 얻을것이다.
시작이 반이다 라는 속담이 있지요..
차쿠의 종탑이 나머지 반을 채워주실걸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