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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차쿠뜨락] 첫번째_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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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쿠지기 댓글 0건 조회 613회 작성일 19-03-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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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뜨.락.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뜰,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

 

3년 전 차쿠 교육관을 지을 때 내 거실의 창은 양방향으로 내고 싶었다. 그렇게 북쪽으로 낸 창으론 성당이 보이는데 그 안에 제일 먼저 한 일이 요녕성 배주교님한테 허락을 받아 감실을 설치한 일이다. 남쪽으로 낸 창으론 차쿠의 뜰이 한 눈에 보이니, 이른바 두 개의 밭을 동시에 넘나들 수 있는 셈이다. 영혼의 밭이라 칭한 ‘감실’과 육신의 밭이라 칭한 ‘뜰’이다. 이 텃밭 안에서는 그야말로 내 맘 대로다. 1000㎡, 작지도 않는 땅의 월세가 한국 돈 2만원이면 되니, 여기엔 뭐를 심어도 본전은 된다. 악취가 날까봐 먼 데로 뚝 잘라 양계장을 만들었고, 밭에는 날일日자로 길을 내었는데 필시 농사가 귀찮아질 것 같아서는 아주 길만 널찍이 내놨다. 공사용 보온덮개를 깐 이 길 위로 묵주를 들고 다니면 도대체 운동을 하는 건지, 기도를 하는 건지, 채소를 보는 건지, 꽃향기를 맡는 건지, 과실나무를 훑는 건지 성모께서도 여간 헷갈리지 않으실 터다. 어쨌든 혼자 어정거리다보면 두세 시간은 금방 간다.

 

칼럼 차쿠뜨락을, 이번에는 맡기로 했다.

9년 전 교구주보 측의 청탁이 왔을 때는 고사하였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엉뚱한 소리만 해댄 것은 다 도망치려고 부린 수작이었다. 부끄러웠다. 재주도 없었다. 이 두 가지를 내보일 마음의 여지餘地가 없었다. 소설은 등장인물 뒤로 숨을 수 있는데 수필은 필자가 더 앞으로 나와야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일석삼조나 되니까 한번 써보기로 한 것일까? 첫째는 조악한 솜씨나마 “교구주보라는 밥상”에 여기 푸성귀 주섬주섬, 찬거리 만들어 올리는데 일조하고 싶었다. 둘째, 내 생활의 선을 팽팽하게 조일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아무래도 칼럼을 맡으면 보고 듣는 것에 더 깨어 살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또, 차쿠를 세상에 홍보하고 싶었다. 아니다! 가장 관건이 되는 필요충분조건이란 무엇보다 나의 부족함에 대해 약간의 여지餘地가 생겼기 때문이다.

 

차쿠의 뜨락에 눈이 내렸다.

소리도 없이 천지를 장악한 희디 흰 순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대축일이라 한층 더한 백색 세상이다.

실은 나도 대충 알고 있다. 이제 봄이 오면 뜨락에 온갖 싹이 나올 텐데 기중 반드시 채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꽃만 발아하는 건 아니라고. 그래도 괜찮다는 여지가 생겼다는 말이다. 잡초를 뽑을 땐 뽑아내더라도 지금은 그저 씨 뿌리는 분께 온통 다 맡기고는, 저리 하얗게 웃기만 하는 눈의 뜨락을 흔연히 바라보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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